매일신문

[목소리 주인공]대구백화점 방송 담당

적절한 선곡 가장 중요 "곡에 따라 매출 달라져요"

"쇼핑하는 고객님 정오를 알려드립니다.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백화점에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단아하고 정돈된 목소리다. 궁금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봤다.

대구백화점 본점과 프라자점의 방송을 담당하고 있는 권수진(30) 김은애(21) 박지후(26)씨.

백화점 구석진 곳 약 6㎡(2평)가 채 안 되는 방송실이 세 사람의 작업실이다. 워낙 방송 목소리가 비슷해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방송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감정을 넣지 않되 부드러운 음성이어야 해요. 행사 방송이 많기 때문에 발음을 또박또박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방송실 직원들은 테스트를 통해 따로 뽑는다. 권씨는 대학교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이고 김씨는 고등학교에서 방송국 동아리 활동을 했다. 입사 한 달째인 새내기 박씨는 평소에 남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해 방송실에 지원했다.

이들은 방송뿐만 아니라 DJ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방송실에는 1천여장이 넘는 음악CD가 꽂혀 있다. 클래식, 가요, 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명절,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시즌에 트는 음악은 따로 모아두었다.

백화점 방송에도 알게 모르게 숨겨진 원칙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선곡.

"오전에는 내점 고객들이 적으니까 잔잔한 클래식을 틀어요. 그러다가 점심시간을 기점으로 팝 음악을 선곡합니다. 가장 붐비는 오후 3시가 되면 비트가 빠른 최신 가요를 한 시간가량 틀어요."

백화점 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의 손길은 신중하다. 요즘 가장 자주 트는 음악은 카라, 쥬얼리 등의 최고 인기 가요. 빠른 비트의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빨리 움직이고 쇼핑도 과감하게 한다고 한다.

얼마 전 김연아 선수가 우승했을 때는 일주일쯤 영화 007의 배경음악을 튼 적도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이슈가 무엇인지 늘 생각해야 한다.

하나당 30초쯤 되는 방송 원고는 직접 작성한다. 그래서 고참인 권씨는 후배들에게 '틈나는 대로 책을 많이 읽어라'고 권한다.

또 세 번 이상 똑같은 방송은 하지 않는다. 단, 미아 찾기 방송은 예외다.

때로는 VIP 초청행사나 패션쇼 행사에 사회를 맡기도 한다. 대중들에게 얼굴을 드러내는 많지 않은 기회. 그래서 이런 행사가 더욱 재밌다. 새내기 박씨는 "아직도 내 목소리가 매장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과연 들리기나 하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모두 엇비슷해 보이지만, 백화점마다 방송 목소리 특색이 뚜렷하다. 얼마 전 서울 백화점 모니터를 다녀온 권씨는 백화점 특징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고 말한다.

"나이든 고객이 많은 현대백화점 방송직원은 말을 아주 천천히 했고요, 젊은층이 많은 롯데백화점은 목소리도 빠르고 경쾌하며 톤이 높았죠. 신세계는 기차 안내방송처럼 감정 없이 딱딱하더라고요. 백화점 특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 재미있었어요."

오전 9시 30분 직원방송 때는 직원들의 생일을 챙겨준다. 방송을 통해 프러포즈를 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인사 캠페인 때 자신의 말에 따라 직원들이 도열해 인사 연습을 한다고 상상하면 짜릿하다.

"그냥 흘러가듯 듣지 마시고, 한 번쯤 귀 기울여 들어주세요. 알찬 정보도 많답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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