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씨름판의 황태자들, 다시 한번 샅바를 잡다

'슈퍼 두꺼비'와 '장난꾸러기'가 만났다. 이 둘은 당대 씨름판을 평정한 스포츠 스타다.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더 친한 두 사람은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

둘은 공통점이 많다. 씨름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이고, 고등학교 때 아마추어 씨름판을 평정하고 프로씨름판에 뛰어들어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인생곡절도 있다. '슈퍼 두꺼비'는 올해 고깃집을 개업했으며, '장난꾸러기'는 이종격투기로 전향했다가 다시 현역 씨름선수로 복귀했다.

둘의 역대 전적은 자칭 '씨름판의 황태자'라 부르는 '장난꾸러기'가 다소 앞서지만 씨름판을 떠나면 둘은 친한 형·동생이다. 당시 시합 때도 같이 다니기도 했으며 현대중공업 씨름단에 함께 있기도 했다. 이달 9일 '슈퍼 두꺼비'의 고깃집인 대구 수성구 황금동 영천식육식당에서 둘을 만났다.

■고깃집 주인된 '슈퍼 두꺼비'

'축구선수→천하장사 씨름선수→고깃집 사장'.

김정필 장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 동구 신암초교에서 축구선수로 뛰고 있었다. 하지만 인근 동부초교 고(故) 정정섭 선생님이 '씨름을 한번 해봐라'고 권유했고, 김 장사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축구는 맨날 뛰니까 힘이 든데 씨름은 빵과 우유도 주고 힘들게 뛰지 않아도 되니까. 더 좋은 건 이기니까 재밌다는 것'. 실제 김 장사는 초교 4학년 때 씨름을 배우지도 않고 1명을 제외한 다른 씨름부원들을 모두 제압했다.

중학교 3학년, 고교 1학년 때는 키가 부쩍 커지고 체중도 늘어나 씨름하기에 좋은 체형까지 갖춰 아마추어 씨름판을 평정했다. '누구든 붙어라'는 자신감이 충만할 때였다.

김 장사가 프로입단 당시에는 드래프트제도가 시행되는 해라 아마 1위로 프로 꼴찌씨름단인 부산조흥금고에 입단했다. 프로 입단하자마자 전성기가 찾아왔다. 프로 초년병 시절인 1992년, 93년 잇따라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것.

하지만 김 장사는 이후 이태현을 비롯해 신봉민, 백승일, 김경수 등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천하장사는 못하고 백두장사만 몇 번 더 하는데 그쳤다. 특히 그는 김영현, 최홍만 등 자신보다 20cm가량 큰 장신 선수들에게 약했다.

대구 출생으로 동부초교와 영신중·고를 졸업한 후 곧바로 씨름판에 뛰어든 김 장사는 대학에 가지 못한 학벌 보충을 대구보건대 헬스매니지먼트과에서 했다. 그는 지난 5월 대한씨름연맹 기술위원장직을 그만두고 8월부터 씨름판과 전혀 관계없는 장사판에 뛰어들었다.

김 장사는 "3개월 남짓 장사를 해보니 크게 돈을 벌지는 못해도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며 "손님들을 대하다보니 말도 먼저 걸고, 술도 한잔 따라주는 등 붙임성이 생겼다"고 웃었다. 그는 이 고깃집을 시작한 것에 대해 '제2의 사회생활 시작'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또 손님들을 대하면서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먼저 걸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다"며 "그래서 제가 먼저 다가가 소개를 하면 다 알고 있다는 듯 얘기하는 모습이 보수적인 도시, 이 지역 사람들의 특성인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아직도 운동할 때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한 김 장사는 우리 고깃집 전화번호는 '053-766-2345'라고 꼭 써 달라고 필살기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아직 건재한 '장난꾸러기'

이태현 장사는 천하장사 3번, 지역장사 13회, 백두장사 18회 등 모두 40회에 걸쳐 타이틀을 획득한 명실상부한 '씨름판의 황태자'다. 총상금만도 10억원에 달한다. 이 장사는 씨름판에 올라가서 그가 두려운 상대는 없을 정도. 이만기-강호동-김정필 이후 이태현 장사와 더불어 김영현, 신봉민, 김경수, 백승일 정도가 호적수였다.

하지만 이 장사가 씨름판에서 보여주는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 1시간 이상 얘기해보니 장난꾸러기 표정이 역력했으며, MC이자 개그맨인 강호동에 이어 방송계로 진출해도 좋을 정도로 재밌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그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이종격투기 외도. 이 장사는 "씨름판이 너무 시들해지고 재미도 없던 터에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도전해보기 위해 진출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선배인 이만기 인제대 교수를 비롯한 많은 선·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이종격투기를 했던 2년 동안은 그에겐 혹독한 시절이었다. 첫 게임에서 어이없게 패한 뒤, 엄청난 악플에 3개월 동안 집안을 나서지도 못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것 같아 지인들의 경조사에도 가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만나 부조만 전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장사는 "악플은 사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것 같아 밖으로 나갈 용기가 안 생긴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후 그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러시아로 가 체계적인 격투기 훈련을 받은 뒤, 일본에서 쉽게 1승을 거두며 안착하는 듯 했으나 세번째 대전에서 네덜란드 출신으로 K-1과 그랑프리에서 톱선수급인 알리스타 오브레임 선수에게 단 한방의 펀치에 기절당하는 수모를 또 겪었다. 그는 "맞은 기억도 없고 일어나보니 라커였다"며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펀치였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아내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종격투기를 접고 지도자의 길을 걸으려 했으나 아직 건재한 체력과 씨름판에서의 환호와 함성을 잊지 못해 다시 현역의 길을 걷고 있다. 남유진 구미시장과 구미시청 씨름단 김종화 현 감독의 설득도 그의 씨름판 복귀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주변분들의 격려도 있었지만 제 자신이 씨름판에서 많은 관중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 환희가 가장 좋고 그립다"고 고백했다.

지난 추석대회에서 황규연 장사에게 3대1로 져 준우승에 그친 이 장사는 이번 홈구장이나 다름없는 12월 경주대회에서는 반드시 타이틀을 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장사 먹으면 같이 술 한잔 합시다. 제가 낫게 쏘겠습니다"고 너털웃음을 보였다.

다시 현역에 복귀한 이 장사지만 9일 기자와 만날 땐 입에 마스크를 쓰고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왔었다. 그의 아들이 신종플루 증상을 보였기 때문. 병원에 들렀다 인터뷰를 하러 온 그는 '이제 괜찮은 것 같다'고 다소 긴장을 풀었다. 신종플루는 천하장사 부자에게도 겁없이 다가가는구나 생각했다.

한편 이 장사는 경북 김천 출신으로 구미초교, 의성중·고를 거쳐 현대코끼리씨름단에 몸담았다가 현재는 구미시청 씨름단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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