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구국제오페라축제도 끝나고, 지난주까지 단풍으로 물들어 화려하던 가로수들도 싸늘한 찬바람에 나뭇잎을 흩날리기 시작했다.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다가오는 이 즈음이 사계절 중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때인 듯하다.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를 대표하는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의 작곡가, 도니젯티(Gaetano Donizetti·1797~1848) 벨리니(Vincenzo Bellini·1801~1835)와 함께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벨칸토 낭만주의를 이끌어낸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Gioachino Antonio Rossini·1792년 2월 29일~1868년 11월 13일)가 141년 전 바로 어제 11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모두 음악가였던 로시니는 아주 어릴 적부터 뛰어난 음악적 천재성을 보여주면서 노래도 매우 잘 불렀다고 한다.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으면서 12세에 현악 4중주를, 그리고 불과 14세에 첫 번째 오페라를 작곡했다. 4년 후인 1810년 단막의 오페라 부파 《결혼보증서(La Cambiale di matrimonio)》가 베니스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로시니는 단숨에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다. 이후 1829년 37세까지 《신데렐라(La Cenerentola)》 《도둑까치(La Gazza ladra)》 《윌리엄 텔(Guillaume Tell)》 등 거의 40여편에 이르는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하니 로시니는 '오페라 제조기'가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작의 작곡가였다. 또한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세비야의 이발사》는 단 16일 만에 쓰여졌다고 하니 로시니 역시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선율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로시니의 오페라는 당시까지만 해도 관현악이 취약하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새로운 관현악법을 도입함으로써 성악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했으며 아리아 창법에 있어서도 고도의 테크닉과 풍부한 표현력이 동시에 필요한 벨칸토(Bel Canto) 창법을 개발해서 도니제티와 벨리니의 오페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로시니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의 전성시대가 나타날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6세에 세상을 뜬 로시니가 한창 왕성한 활동기였던 37세에 오페라를 절필한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다수의 기악곡과 세속 및 종교적인 성악곡을 계속 작곡했으며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에서 로시니의 요리에 대한 열정과 애착은 여러 프랑스 요리에 로시니 이름이 붙여진 걸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투르느도 로시니' (Tournedos Rossini)나 '필레 드 뵈프 로시니'(Filet de Boeuf Rossini)는 프와그라(Foie gras·거위간)와 버섯이 곁들여진 쇠고기 안심 요리의 일종이라고 한다. 로시니가 파리에 머무를 때 그의 살롱에는 스탕달, 발자크와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인들이 찾아와 그가 새로이 개발한 요리를 맛보며 즐기곤 했다고 한다.
새로운 맛을 찾아 자신의 남은 여생을 바친 로시니에게 젊은 시절의 새로운 맛이 바로 오페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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