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졸 여성 환경미화원 그녀들의 하루는

가을 낙엽의 낭만을 잃은 대신 첫 새벽 빗질에서 보람을 얻다

대로변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대졸 여성 환경미화원 이귀화씨와 조홍경씨.
대로변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대졸 여성 환경미화원 이귀화씨와 조홍경씨. '좀 하다 말겠지'라는 곱잖은 시선에도 지난 2년을 한결같이 일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낙엽을 보며 가을 정취에 빠질 때가 있었죠. 하지만 환경미화원이 된 지금은 '이제 때가 왔구나'라고 생각하지요."

대구 달서구 송현동 가야기독병원 앞 도로. 조홍경(43)씨의 양손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들려있다. 조씨는 지난해 1월부터 이 일대 가로 청소를 맡은 환경미화원. 쌀쌀한 날씨임에도 조씨의 옷차림은 단출했다. 운동복 차림에 '달서구청'이라고 찍힌 형광색 조끼가 전부. 모자챙에는 하얀 소금기가 묻었다. 춥지 않냐고 했더니 "덥다"고 되받는다. 가을에 물들어가는 나뭇잎 보기를 즐기던 조씨는 바닥에 떨어진 낙엽의 양부터 가늠하는 직업병이 생겼다. 불과 2년 사이다.

같은 시각 대구지하철 1호선 월촌역 인근에서 만난 이귀화(44)씨. 이씨는 찬 바람을 못 느끼는 듯했다. 도로변에 떨어진 낙엽은 제거 대상이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낙엽 쓸기에 여념이 없는 이씨는 조씨와 환경미화원 동기생이다.

대구의 여성 환경미화원은 모두 34명. 공채 미화원 9명(달서구 7명, 수성구 2명) 가운데 대졸 출신도 3명이나 된다. 2007년 말 환경미화원 공채에 합격한 조씨와 이씨 역시 대졸이라는 점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었다. '좀 하다 말겠지'라는 곱잖은 시선도 섞여 있었다. 두 사람은 그러나 미화원이란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 새벽형 인간으로 부지런하게 살 수 있게 된데다 중·고생 자녀들의 교육비 부담에서 해방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씨는 다섯 남매의 엄마다.

이씨와 조씨의 전공은 각각 인문학과 공학이다.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전공이지만 지금껏 해온 일도 전공과 관련있는 건 아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씨는 노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했고, 조씨는 개인사업 경험이 있다. 둘 다 주부로 살아온 날이 10년 이상이다. 이렇다보니 환경미화원의 업무가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고참 환경미화원들이 존경스러워 보일 정도라는 게 두 사람의 한목소리다.

두 사람의 하루 일과는 오전 4시에 시작된다. 아이들의 아침밥을 준비하고 일터로 나가기까지 1시간여가 걸린다. 업무는 오전 6시부터다. 이른 새벽부터 땀으로 샤워하고 나면 2시간은 훌쩍 지난다. 오전 8시. 집으로 돌아가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9시30분까지 동사무소에 들러 출석 확인을 한다. 이후 시간은 또 현장이다. 부지런히 쓰레기를 쓸어담는다. 10월 말부터는 낙엽과의 한판 전쟁 중이다. 낙엽을 치우다보면 쓰레기는 자동으로 빗자루에 묻어 들어온다.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가 환경미화원들이 가장 바쁜 시깁니다. 바로 낙엽 때문이죠."

1시간에 100m 전진하기가 벅차다. 두 사람의 담당구역은 각각 4㎞ 남짓. 양버즘나무를 바라보며 이씨가 한숨을 쉰다. 은행나무는 1주일 정도면 잎이 다 떨어지지만 양버즘나무는 한 달 내내 환경미화원들을 괴롭힌다. 하루 종일 낙엽을 쓸어 담으면 둘레 3m, 높이 1m 가량의 포대 11개 분량의 낙엽이 모인다.

조씨의 일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고역 중 하나는 '로드킬' 처리다. 처음 로드킬 동물 사체를 처리해야 했을 때는 30분 동안 사체만 바라보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하지만 조씨에게 더 힘든 고역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쓰레기봉투에 담지 않은 쓰레기를 파헤쳐 버린 사람을 찾아내서 '다음부터 이러면 쓰레기 수거를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우리가 버리지 않으면 니네가 뭘 먹고 사냐'고 하더군요. 제가 환경미화원 조끼를 입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여성 환경미화원이라는 이유로 다가와 "차 한 잔 하자", "좋은 데 가서 밥이라도 먹자"고 하는 경우도 적잖다. 그래도 두 사람은 꿋꿋하다. 여성이기 전에 아이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일과를 마치면 오후 5시. '칼퇴근'이지만 몸이 가볍진 않다. 집에 돌아가 또 가사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힘겹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씨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주변에 베풀 수 있는 길이 있어 행복하다. 쓰레기를 치우다 빈 깡통이 있으면 한데 모은다. 파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가져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어르신들에게도 그들만의 구역이 있어 적당한 곳에 모아두면 알아서 가져간다.

조씨는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아침을 깨우는 사람들과 친해졌다. 아침운동 하는 사람, 새벽기도 가는 사람, 야쿠르트 배달원 등등. 조씨가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알려주고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다.

이씨에겐 요즘 상담전화가 적잖다. 환경미화원 공채로 합격해 교육비에서 해방된 이씨에게 주변 사람들이 관련 정보를 물어온다는 것.

"언제 또 환경미화원 공채가 있는지 묻는 엄마들이 많아요. 힘드니 하지 말라고 하면 그제서야 신세를 토로하더라고요. 사실은 새벽에 우유배달, 아파트 세차 등을 하고 있다면서 저를 많이 부러워하더라고요."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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