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미미의 적극적인 삶

류진교 교수
류진교 교수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의 여주인공인 미미는 폐결핵 환자이고 결국에는 그 병으로 죽게 된다. 비극적 오페라임에도 전체적인 푸치니의 선율은 지독히도 아름답다. 등장 인물들의 가난하다 못해 찌든 삶마저도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보인다. 일주일 만에 겨우 한 끼 식사를 하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을 잃지 않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해지게 한다. 미미의 출현으로 인해 남자들만 생활하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지고 로돌포와의 사랑을 통해 오페라의 아름다움은 더 극적이 되는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미, 루루, 비올렛타라는 이름은 오페라에 등장하는 화류계 여성들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라보엠이 작곡(1849년 완성)된 당시의 통념상 폐결핵은 술과 쾌락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던 매춘부와 같은 타락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고 알려져 있던 때였다. 폐결핵이 전염병이란 사실은 그 후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밝혀졌다. 미미 역시 병을 얻어 쓸쓸하게 지내던 중 아래층에 사는 4명의 남자들 중 로돌포를 보게 된다. 미미는 어느 날 방의 꺼진 촛불을 붙이기 위해 로돌포의 방문을 두드리고, 저 유명한 아리아 '그대의 찬 손'과 '내 이름은 미미'가 울려퍼진다. 미미가 "남들이 나를 미미라고 부르지만 내 이름은 원래 루치아"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사는 다락방 아래의 로돌포를 찾아간 것은 루치아(이탈리아어 '루체(빛)'에서 파생된 이름)라는 자신의 잃어버린 이름(빛)을 찾고자 하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미미의 적극적인 행동은 로돌포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결국에는 사랑의 감정을 갖고 연인이 된다. 본래의 이름인 루치아처럼 밝게 빛나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미미. 희망이 없는 삶 속에서 로돌포를 통해 다시 한 번 이름처럼 살고자 했던 미미의 모습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애착을 느끼게 한다.

1995년 내가 미미로 출연한 대구시립오페라단의 라보엠은 나의 가정을 이루게끔 한 작품이다. 라보엠 4막에 미미가 죽는 장면이다. 미미가 죽기 전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작별을 고하는 장면에서 연출자의 의도는 마르첼로만 미미의 손에 키스를 하도록 했으나, 꼴리네 역할을 연기했던 지금의 내 남편이 갑자기 내 손에 키스를 해 모든 출연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던 기억이 있다. 미미를 연기하면서 "어떠한 삶 속에서도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은 삶 그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미미는 비록 죽음의 운명을 극복하지는 못했으나, 기대할 수 없었던 확고한 사랑을 얻었다.

<대신대 교회음악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