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책과 예술]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석영중 지음/ 예담 펴냄

슈베르트 음악'톨스토이의 문학 인간의 도덕적 고뇌 처절히 표현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깊은 정적을 일깨우는 밤, 프란츠 슈베르트(Faanz Schubert 1797~1828)의 를 듣는다.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그가 자신처럼 일찍 사라질 것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단명해버린 6개의 현을 가진 악기,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곡은 깊은 우수에 젖어 있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또 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만이 나에게 엄습해 온다. 이렇게 기쁨도 즐거움도 없는 나날은 지나간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슬픔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 슬픔은 이해를 높이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 그는 이 곡을 쓴 1824년의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키가 작고 뚱뚱하며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사람들 앞에 설 용기조차 없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찾아온 카롤리네(Caroline Esterhazy, 1805~1851)와의 사랑,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과 비애가 이 곡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하다.

어쩌면 이 곡은 매일처럼 새벽이면 매음굴에서 빠져나온 그가 차고 영롱한 밤하늘에 애증(愛憎)의 도덕적 결벽증을 새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고뇌한 것이 단순히 가난과 병마가 아니라면 비록 그가 앓았던 병이 치명적인 매독이라 할지라도 늘 사랑을 꿈꾸었으되 단 한 번의 사랑조차 이루지 못한 순수한 영혼의 상처인 그의 음악은 오히려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석영중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읽는 내내 슈베르트를 떠올렸다. 아니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는 내내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y 1817~1875)를 생각했다. 위대한 작가이자 위대한 교사였던 그는 슈베르트와는 달리 도덕적 삶을 세상에 전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이나 혹은 감추어야 할 일기 속에서 직설적이고 대담하게 자신의 비도덕적인 생활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난도질 하고 그러다보니 완전히 찢겨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톨스토이만큼 육체의 기쁨에 탐닉하면서 동시에 육체를 혐오한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육체의 활력 속에 늘 어두운 그림자를 동반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이러한 면은 오히려 그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인간적인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가끔 우리는 세상의 한 편에서 도덕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부도덕한 인간의 기만을 보곤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것만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보게 될 때 스스로 만신창이가 되면서 도덕적 우위를 실천하고자 애쓴 톨스토이는 얼마나 위대한가? 지금 이 순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에 단 한번이라도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혹은 도대체 누구의 편(정의와 불의)에 설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고뇌한 톨스토이를 곁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슈베르트의 인간적 고뇌와 톨스토이의 끊임없는 도덕적 고민, 그것이야 말로 예술의 진정한 자양분일지 모른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얼마나 도덕적인가?

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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