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2009청년미술프로젝트(KT&G 별관/~29)

거칠고 조야함이 주는 감동

LA의 서부에 있는 베르가모트 스테이션(Bergamot Station)은 한때 화물역으로 또는 농산물 가공공장으로 사용되어 오던 낡은 설비의 건물들이 서있는 장소였다. 그 곳을 1990년대에 산타모니카시가 아트센터로 재활용하면서 미술관과 화랑 아트 숍 등이 갖춰져 이제는 명소가 되었다.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그곳 유래와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데 방문객만 한해 6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처음 그곳에 가 평범하지 않은 사례를 보고 우리의 경우에도 이전한 버스 터미널이나 문 닫은 공단 건물 같은 곳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하고 사진을 찍고 팸플릿을 얻어왔다.

대구의 수창동 옛 전매청 자리 KT&G 별관 건물도 한때 담배 제조창으로 이름 높았던 곳이 생산을 중단한 이후 용도가 없어진 노후 건물이다. 둔중한 외관과 단순한 내부구조, 거칠고 조야한 실내 공간이 방치된 건물 특유의 퇴락 분위기를 풍기지만 한때 우리 경제를 견인하고 뒷받침했던 든든한 지주였으리라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주변의 환경도 그렇고 문화공간으로의 재활용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오히려 이런 곳을 새로운 예술관련 장소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2009 청년미술프로젝트'전이 한층 관심이 가는데 다양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이런 환경에서 좀 더 새롭게, 흥미롭게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다.

1, 2, 3층에 걸쳐 40여 작가들의 비디오 영상과 설치 작업, 그리고 평면 회화 작품들이 넓은 공간을 활용해 펼쳐지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조야한 장소와 낯선 환경과 어울려 현대미술 특유의 다양성을 체험하게 한다. 마침 홍현숙의 '북가좌동 엘레지'라는 비디오 작품은 바로 재개발 지역의 철거작업 후 남은 빈 공터에서 벌이는 퍼포먼스를 담은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떠난 빈집의 뜰에 벌써 잡초가 무성하고 헐리다 만 벽체의 한 곳은 그곳이 이전에 욕실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옛 살림의 흔적이 보인다. 마치 '부재의 존재'를 '이야기'하듯 태연하게 재연하는 모습을 찬찬이 보여주고 있어서 삶의 현실에 대한 많은 관념을 떠오르게 한다.

홍원석의 신구상적인 회화도 현대적 삶의 특징들을 예리하게 표현하는 작가와 작품으로서 주목을 끈다. 그는 일상적인 모티프 속에 많은 상징들을 내포시켜 풍부한 해석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회화적인 표현도 대단히 매력적이어서 전시장을 나온 후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큰 기획전이라고 해도 감동을 주는 작가를 새로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에 속한다. 미술 평론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