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2회 每日 한글백일장 당선작] 산문 중등부 장원 '손님'

올해 처음으로 경상북도교육청과 함께 실시한 제22회 매일한글백일장 공모전에는 모두 1천924점의 수준높은 작품들이 응모해 모두 89편이 당선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 실시된 이번 백일장에서는 신설된 초등부를 비롯해, 중등부와 고등부 및 일반부에서 실력을 겨뤄 전체 대상(1명)과 각 부문별 장원(1명), 차상(1명), 차하(2명), 장려상(3명)이 선정됐습니다.

손님

정민영(선주중 1학년)

시간은 3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나의 푸르렀던 때로. 그저 웃을 줄만 알았던 초등학교 4년 시절 나에게로, 지금 떠나보려 한다.

모두가 밝기만 했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3학년 때와는 사뭇 다른 환경들과 생각들. 이제 아는 것도 많다는 일종의 반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에 대한, 친구들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조그마한 반항. 그 반항 때문이었는가, 맑았던 마음이 투명하고 영롱한 그 빛을 잃어가는 듯했다. 대신 그 자리를 더 커다래진 미움, 시기, 질투가 메웠나 보다. 그래서 사건은 일어났다.

장난을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만날 장난칠 생각을 하는지 언제나 그 아이한테 웃음은 떠나갈 줄 몰랐다. 차분하고 얌전하기만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무척이나 친절하고 착한 아이로 기억된다. 눈이 마주치면 계속 바라보게 될 것 같은 촉촉한 눈이 참 예뻤다. 영진이란 그 아이는 늘 나랑 붙어다녔다. 우리는 참 친했었다. 내가 영진이의 뒷자리에 앉았고 영진이는 그 장난을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짝이었다. 수업시간이면 언제나 소곤소곤 속닥속닥 소리로 꽤나 시끄러웠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다같이 친했는데, 다함께 떠들었는데 그래서 모두가 말이 많았는데 어느 날부턴가 영진이는 말수가 줄었다. 내 속만 탔다. 얌전해도, 조금은 조용해도 나랑은 이야기 잘하던 아인데 우리의 대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예쁘던 눈에는 슬픔이 가득 내려앉아 어딘가 모르게 우울해보였다. 그 영문을 물을 용기가 없어 그냥 가만히 평소처럼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웃겨주기 위해, 그녀만의 생각이란 나무들로 복잡한 마음의 숲에서 구출해 주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영진이는 결국 갔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것이다. 아무런 말도 인사도 없이. 그때가 아마 이제 막 봄빛이, 그 따뜻함이 물러가는 5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마치 손님처럼, 그냥 잠시 들렀다 가는 손님처럼 그렇게 우리 교실을, 우리 학교를, 그리고 내 곁을 갑작스레 떠났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영진이가 가고 며칠이나 지난 나중에야 나는 그 아이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선생님들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결과이다. 영진이가 짝과 장난을 치다가 짝을 때렸나 보다. 장난을 좋아하던 그 아이는 장난삼아 영진이를 때렸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약이 올랐나 보다. 나의 친구는 남자아이를 한 대 더 때렸다. 그러던 것이 곧 말 없는 싸움으로 확대되었다. 남자아이는 사과를 원했지만 영진이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결국 장난을 좋아하던 그 남자아이는 영진이를 힘들게 했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영진이 흉을 보고 다녔다고 한다. 쟤랑 놀지 말라고, 쟤 싫다고 하면서 말이다. 어이없는 일이다. 그랬다. 빛이 사라진 그 자리에 들어앉은 미움, 시기, 질투가 기승을 부려 그 남자아이에게 영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심어 준 것이었다. 그렇게 차츰 아이들이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하니까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웃음을 잃어가던 영진이는 떠났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웃었던 그 아이는.

영진이가 떠나고 나서 그 아이의 전학을 무척 아쉬워하던 나는 3년이란 시간에 묻혀 그 아이를 잊어갔다. 그래도 가끔씩은 영진이가 생각나는 때가 있다. 친구들과 문제가 생길 때, 혹은 누군가 전학을 갈 때. 그때마다 나는 그 아이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걱정도 된다. 마음이 여렸던 아인데 잘 지낼까 하고. 그때는 나도, 영진이도, 그리고 그 남자아이도 너무 어려서 아무도 영진이를 지켜주지 못했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소중한 친구를, 손님처럼 잠깐 들렀다 떠난 나의 친구를 떠나지 않도록 잡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그리운 옛 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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