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도시는 성장 정책에 따라 급격히 팽창하고 발전해왔다. 그곳에는 경제 논리와 강자의 시선만 존재했을 뿐 사람의 숨결이나 자연의 소리를 담아낼 공간조차 없었다. 더욱이 도시는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꽁꽁 닫힌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국내서도 도시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 여성과 약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가 여성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하는 공간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도시는 더 이상 존재 가치와 그 기능조차 상실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달 13일 대구시 중구청에서는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대구의 여성들은 어떤 도시를 원하며 도시의 어디에서 행복감을 얻는지를 알아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정부, 시민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그와 동시에 '여성이 행복한 도시'의 문제점도 짚었다.
◆여성은 어떤 도시를 원하고 있는가
여성 친화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이 물음에 여성들은 ▷교통이 편리하고 ▷안전하며 ▷보수적 폐쇄적 문화가 제거된 도시가 가장 여성친화적인 도시라는 답을 했다. 현재 대구 여성들이 가장 불만족 스러운 부분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도시 치안이라고 응답한 이가 22%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교통불편 해소, 보수적 폐쇄적 문화, 공공시설 부족, 도로 불편 순이었다.
이 외에도 어둡고 지저분한 거리, 지하철 계단, 공중화장실 부족과 청결하지 못한 점, 버스나 지하철의 높은 손잡이, 노인 장애인 청소년을 위한 편의시설 부족, 낙후된 공공시설, 인도와 자전거길 분리 미흡, 여성택시 운전기사의 필요성을 꼽았다.
살기 좋은 지역의 필수조건을 묻는 질문에는 '깨끗한 자연'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문화공간, 시민의식 순이라고 응답했다. 대구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수성구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다음이 동성로였다. 가장 싫은 지역으로 여성들은 '시내'라는 응답이 35%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성서공단 30%, 대구역 15%였다.
대구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의 결론은 이랬다. 여성이 행복한 대구로 만들려면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과 ▷보수적인 사회 인식의 변화 ▷문화공간 확보 ▷육아문제 해결 등이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성 친화도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여성의 8%만이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 친화도시는 여성에게조차 낯설고 생소한 단어였다. 또한 여성 친화라는 말에는 역차별의 느낌마저 준다며 여성 친화에 대한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 친화적인 도시보다는 가정 친화적인 도시가 오히려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다면 여성 친화도시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무엇인가? 여성의 절반 이상이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것은 그동안 지자체의 정책 결정에 여성들이 배제되어 있음을 웅변하는 대답이었다. 그 다음으로 보육시설 증가, 공공시설물 관리, 해당 법률 강화 등의 순으로 꼽았다.
여성 친화도시를 위한 지역민들과 민간단체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성 절반이 주민들의 의식을 높이는데 가장 앞장서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출산휴가 의무화, 투명한 행정운영, 검소한 주민들의 생활이라고 응답했다. 김영화 경북대 사회복지학과교수는 "여성 친화도시를 만들려면 안전성과 편리성의 추구와 함께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공간 마련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공공보육시설의 확충이나 양육지원시설 확충이 여성 친화적 도시의 과제다"고 결론지었다.
또 여성 친화적 도시 방향성에 대해서 박선경 준 건축사사대표는 여성친화적인 도시설계는 ▷자동차보다는 보행자 중심의 도시공간 ▷ 가족친화적인 도시공간 조성 ▷생활자 관점의 장소만들기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 친화적인 도시는 안전하고 활기가 넘쳐야 하며 장애가 없는 주민참여도시라고 정의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시와 익산시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에서 여성 친화적인 도시를 거론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제대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선 여성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성 친화도시의 조성 기준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으며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성 친화적이라는 전제가 여성을 오히려 사회적 약자로 취급하는 발상은 아닌가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또 관에서 일방적으로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여성들의 소극적인 자세 등이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장미진 대구가톨릭대 예술학과 교수는 "여성들이 주체의식과 참여의식을 가지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진정한 여성 친화적 도시가 될 수 있다" 며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아이의 돌이나 부부의 결혼기념일, 회갑기념일 등에 다양한 문구나 시를 새겨 만든 아름다운 벤치를 기증하는 일이 자연스러울 정도가 됐다"고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참여가 바로 여성 친화적인 도시로 가는 열쇠라고 했다.
임경희 대구여성가족정책센터 연구원은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대한 하나의 도구로 여성 친화도시를 내세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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