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피 바이러스'퍼트리는 권영복·윤달구씨

'웃음 바이러스'에 한번 감염되면 '중증 행복증후군'평생 가요

웃음치료사 권영복
웃음치료사 권영복
가수 윤달구
가수 윤달구

'해피 바이러스'(Happy Virus). 모든 사람들에게 퍼질수록 좋다.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기고, 웃다 보니 행복감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것 같다. '우울 바이러스'(Groomy Virus)가 대한민국에 더 널리 퍼져 있다. 자살률이 OECD국가 중 단연 1위다. 예전보다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정신문화는 더 피폐해져 가고 있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 사람들의 표정을 한번 살펴 보라. '삶에 찌든 무표정'이 대부분이다. 가족사, 사회적·경제적 고통 등 삶의 무게에 웃음을 잃어 버렸다.

비록 현실은 이렇듯 팍팍할지라도 더 웃고 행복을 전하려 노력하는 두 전도사가 있다. 한 웃음치료사와 봉사하는 가수가 그 주인공.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남을 기쁘게 해주는 것에 얼마나 큰 희열이 있는지 아세요. 사실 가장 큰 수혜자는 제 자신이에요'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더불어 둘은 웃을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웃고 또 웃었다. 둘이 왜 행복한지 그들만의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돼 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권영복'

권영복(47)씨는 자칭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치료사'다. 권영복 삼행시도 선보였다. '권투를 영어로 복싱'. 이 직업으로 전향한 지 5년밖에 안 됐지만 얼굴 표정이 10년은 더 젊어지고 실제로 하루에 수백번씩 웃는다. 전국에서 웃음강의를 가장 많이 하고(지난 1년 동안 500여회), 스스로 가장 많이 웃는 치료사이기도 하다. 올해 일간스포츠에서 주최하는 한국의 명강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웃음 철학에 관한 세가지 얘기를 했다. 첫째,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운동. 웃을 때 우리 몸의 근육이 최소 231개에서 최대 500개까지 움직여 하루 2시간 이상만 웃어도 운동이 필요 없다는 것. 실제 권 치료사는 따로 운동을 하지 않는데도 하체가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둘째, 웃음은 우리 몸의 가장 좋은 청소기. 웃을 때 몸 안의 나쁜 기운과 독소, 노폐물, 스트레스 등이 다 날아간다는 설명. 셋째, 최고의 화장품이자 성형수술. 웃다 보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얼굴이 환해지면서 이보다 더 좋은 화장품이 없고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안면성형은 없다는 논리.

'슬플 때나 좌절할 때는 없느냐'는 질문에는 "일단 입을 벌리고 '헤헤' 하고 웃어보세요. 슬픔이나 좌절도 지나가고 웃다 보면 또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라고 답했다.

권 치료사가 항상 웃기 시작한 뒤 가정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아내와 큰딸 지수(대학 1년), 둘째 딸 다예(고1)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두 딸은 학교 성적도 더 좋아졌으며, 아내와의 부부 금슬도 더 돈독해졌다.

그는 "웃다 보니 하체가 단단해지고 근육이 발달하는데 아내가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고, 두 딸은 아빠가 항상 바보처럼 웃으니 어떻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며 그야말로 '맨발의 기봉이'처럼 순수하게 웃었다. 기자와 사진기자 역시 그의 말과 웃음에 대박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웃음은 전염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이렇듯 지금은 행복한 웃음치료사지만 그는 20년 동안 세계적인 제약회사 GSK(글락소 스미스 클라인)과 MSD(머크사 한국기업)에서 영업 1위 사원과 서울지점장을 했던 연봉 1억원의 사나이였다.

경북 안동 길안에서 태어나 대구공고·금오공대를 졸업한 뒤, 제약회사에 뛰어들어 특유의 뻔뻔함과 끈기로 남들이 하지 못한 영업실적을 올리며 직장인으로도 탄탄대로를 겪은 것. 하지만 마음에 기쁨은 없었다. 나이보다 10년은 더 늙어보이고,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고, 갈수록 웃음을 잃어가는 우울증 환자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마침 서울에서 대구로 발령이 나자 인생 터닝포인트의 기회를 잡은 것.

그는 5년 전 웃음치료를 접한 뒤 '내가 갈 길이 바로 이거구나' 생각했고, 단 한순간도 후회 없이 열정적으로 웃고 가르치며 달려왔다.

권 치료사에게 전화를 걸어보라. 그는 컬러링도 서희의 '웃다보니'다. '아하하하 하품해도 웃고, 에헤헤헤 헤어져도 웃고, 오호호호, 호탕하게 웃고….'

그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한다. 이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다음날 또 인사를 하니 '혹시 저 아세요'라고 묻더란다. 그래서'어제 봤잖아요'라고 대답했단다.

혼자서도, 차에서도, 걸어다닐 때도 웃는다. 그러다 '혹시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누가 쳐다보면 얼른 휴대폰을 귀에 갖다대고 웃는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웃고 산다.

◆봉사하는 가수, '윤달구'

본명은 윤성균(49), 직업은 동아쇼핑 1층 '박보석' 매장에서 27년간 일한 보석가게 종사자. 그는 보석상 종사자로도 베테랑이다. 척 보면 얼마짜리 손님인지 안다. 하지만 올해 8월에 음반을 내고 정식가수로 데뷔했다. 이 때문에 이름도 부르기 좋고, 달구벌 대구를 연상시키는 '달구'로 바꿨다. TV프로 '스타킹'에 나온 몸집만 한 큰 붓으로 예술 퍼포먼스를 하는 달인 서예가가 지어준 이름이다.

대표곡도 나왔다. 김병걸 작사·작곡의 '낙동강아'. 그는 어릴 적 낙동강가에서 '오디'(뽕 열매) 따먹고, '무리'(오이) 먹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우리 삶과 함께 세월을 견뎌온 낙동강을 노래한 곡을 대표곡으로 밀고 있다. 이미 실버TV·복지TV·리빙TV·가요TV 등 케이블 방송에는 그의 곡이 등장했으며 다음달에는 아이넷 방송에도 그의 노래가 방영될 예정이다.

이렇듯 보석상 윤씨가 가수로 정식데뷔할 수 있었던 건 10년간의 봉사활동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윤씨는 10년 동안 '참사랑 가요봉사단'에서 작은 무대였지만 인기가수로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어려운 이웃들에게 노래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전해왔던 것. 그는 '참사랑 가요봉사단'(참가봉) 창단멤버, 2년 동안 단장을 맡은 핵심이자 주축.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번도 봉사에 빠지지 않았다. 이번 달에 음반 홍보활동 때문에 딱 1번 빠졌다.

'참가봉' 회원 22명이 매월 2만원씩 회비를 걷어, 1년에 46번 이상은 꼭 시설이나 양로원 등을 찾아 위문공연을 했다. 한번 갈 때마다 다과를 70만~80만원어치 풍성하게 사서 간다. 또 매년 6월이면 보훈의 날 때쯤 맞추어 보훈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며, 10월에는 경남 합천 원폭피해자모임을 찾는다. 보훈병원은 4년째며, 원폭피해자모임은 9년째다.

윤씨는 "제가 가서 마이크를 잡고 무대를 휘어잡으면 할머니들이 '윤달구 왔다'고 신발을 벗어 바닥을 내리치고 흥이 최고조에 달한다"며 "한바탕 신나게 흥을 돋우고 돌아올 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그 기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10년간 자비를 들여가며 봉사와 함께 노래를 했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봉사활동뿐 아니라 더 폭넓은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물론 봉사는 제가 평생 해야 할 일이지만 제 이 구수하고 깊은 노래를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이렇듯 가수로 활동하는 윤씨에게는 대구 중구 대봉동에 '두리음반'이라는 든든한 연습실도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연습실에 가 그의 노래를 들어보니 봉사 10단의 테크닉이 묻어있었다. 그곳은 또 '참가봉'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한편 올해 8월에 나온 그의 음반에는 대표곡 '낙동강아'를 비롯해 '사랑의 기찻길' 그리고 그가 가장 잘 부르는 '동동구루무' '멋진 인생' 등이 실려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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