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다른 이름은 '낭만'이라고도 하고 '꿈'이라고도 한다. 여름밤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쏟아지는 별빛이 낭만이라면, 겨울철 산속에서 파랗게 얼어붙는 별을 쫓는 일은 꿈이다.
낭만이 아름답다면 꿈 또한 아름다운 것. 맑은 날이 많은 가을과 겨울, 별을 관찰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성큼 겨울로 다가선 11월 18일. 사자자리 별자리 근처 하늘에서는 1년 중 가장 많은 유성우(流星雨)가 쏟아지는 장대한 우주쇼가 펼쳐졌다. 음력 시월 초이틀, 달빛은 흔적 없고 하늘은 맑다. 잃어버린 어릴 적 꿈을 찾아 함께 '별빛 기행'을 떠나보자.
◆연인과 가족 손에 손 잡고 '별빛 여행'
사자자리 유성우 쇼가 펼쳐진 이달 17일 예천군 감천면 덕율리 (재)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 밤하늘 별들이 연출하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초저녁부터 연인들과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속속 모여들었다. 본격적인 유성우 쇼는 자정 이후 오전 6시까지. 기다리는 동안 센터에서는 '별자리 여행' 행사가 진행됐다.
"인간은 아직 우주가 얼마나 큰지 정확히 모릅니다. 천문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으나 다만 우주가 현재에도 모든 방향으로 팽창 중임만 알 수 있을 뿐 전체 규모는 가늠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약 150억년 전에 '대폭발'(Big Bang)이 있었다고 믿고 있으며, 이 엄청난 폭발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우주의 팽창을 만들어낸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강사의 설명에 짧은 한숨과 함께 장내는 고요하다.
"그럼 다함께 우주 속의 지구를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구는 태양이라는 별을 중심으로 한 항성계인 '태양계'의 9개 행성 중 하나의 행성이죠. 태양계는 태양과 비슷한 별(항성)이 약 1천억개가 들어있는 '우리 은하'라는 엄청나게 큰 별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우리 은하는 또 우리 은하와 비슷한 크기의 은하계가 약 1천억개 있는 우주의 한 작은 일부일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대강이나마 지구라는 존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짐작하실 겁니다."
낭만과 문학으로 노래되던 밤하늘 별빛이 논리와 과학으로 계산되는 순간 혼란은 만만찮다. 모든 단위가 '몇 천억' '몇 조' 단위이다 보니 그 규모가 쉽사리 짐작도 가지 않는다. 다만 아득할 따름이며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그 밖의 어디쯤이란 것만 가늠할 뿐이다. 우리들이 어릴 때 흥얼거린 '푸른 하늘 은하수'의 낭만도 '은하'라는 과학의 세계로 치환하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별과 먼지와 가스가 서로의 인력으로 어우러진 은하는 크기가 작게는 1천광년에서 크게는 100만광년에 이릅니다.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외부 거대 은하는 안드로메다 은하입니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보다 약간 큰 편으로 수천억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지구의 북반구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외부 은하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천체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은하를 관찰하겠습니다."
◆북극성을 찾고 메두사 신화 들어
예천천문센터 주관측실 돔형 천장은 별자리를 따라 돈다. 한쪽이 띠 모양으로 개방된 천장은 관찰할 별자리를 컴퓨터상에 별을 입력하면 천장이 따라 돌면서 열리고 천체망원경이 자동으로 움직여 별자리의 거리와 좌표에 맞춰 겨냥한다.
천체망원경 안에 잡힌 안드로메다 은하는 희뿌연 타원형의 구름조각과도 같다. 저 희미한 것이 수천억개 별의 집단이라니 천체망원경 렌즈를 들여다본 참관자들은 그저 기막혀한다.
예천천문센터 주관측실 옆 보조관측실에서도 천체망원경 렌즈를 타고 수천광년 떨어진 별자리 여행이 계속된다. 눈 나쁜 사람이 보면 3개, 언뜻 보기에도 7개의 별로 구성된 듯한 성단. 망원경을 통해 들여다본 성단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로 반짝이고 그 가운데도 밝은 빛을 내는 별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있다. 변광성(變光性) 별인 황소자리 황소눈알은 다른 별들과는 달리 유난히 붉은빛으로 타오르고 있다.
사람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카시오페이아를 찾고 메두사의 신화를 듣는다. 작은곰자리를 따라 북극성을 찾는 법을 배운다. 가을철 대사각형 별들을 선으로 이어보고 겨울철 대삼각형을 그려본다. 지구 가까이 있는 목성을 둘러보고 멀리 명왕성까지 날아가 본다.
자정을 넘긴 시각. 사자자리 유성우 관찰을 위해 자리를 잡는다.
"유성, 즉 별똥별은 우주공간에 분포하는 각종 먼지나 천체 조각들이 지구의 인력에 끌려 대기권을 지나는 동안 마찰에 의해 불타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안으로 포착되어 마치 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물론 개중에는 타다 말고 지구로 떨어지는 운석도 있지만 대부분 대기권 밖에서 소멸합니다. 특히 오늘 저녁에는 동남쪽 하늘 사자자리 근처에서 많은 별똥별이 쏟아집니다. 그것은 태양계를 지난 '템플-터틀'이란 혜성의 잔해들이 많은 지점을 지구가 공전해서 지나가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참고로 템플-터틀의 공전주기는 33.25년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지난 1977년 말, 1998년 초에 태양계를 지나갔습니다. 지금부터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지 말고 넓게 살펴 별똥별을 찾아보겠습니다."
◆밤하늘 떨어지는 별똥별 보며 기도
천문 강사들의 설명을 듣는 동안 하늘에서는 간간이 유성들이 긴 불꽃의 꼬리를 끌며 우주공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늘을 향해 드러누운 아이들과 연인들은 연거푸 탄성을 지르며 "저기. 저기" 손가락질하기에 바쁘다. 어른들도 미동을 않은 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좇아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유성들은 더러 밤하늘 천장에 가는 일직선을 그리며 가로지르기도 하고 불덩어리처럼 밝게 타다가 흔적 없이 소멸해버리기도 하며 공중에서 낙하하듯 멀리 남쪽 하늘 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초겨울 얼어붙어 새파랗게 질린 하늘에 별들은 저 혼자 반짝이고 별똥별은 가끔씩 흰빛을 내뿜으며 적막을 찢어놓는다.
옆자리의 연인들은 나지막이 소곤거린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위해 기도해주고 우리 소원도 빌자." 엄마도 아이에게 말한다. "너도 소원 빌어." 어느덧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비는 연인이 있을 것이고, 공부 잘하도록 비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안동서 별빛 여행을 온 서미숙(46·여)씨는 "어릴적 책에서만 배웠던 별들을 어른이 된 지금 망원경을 통해 만나게 되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라면서 "유성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니 밤하늘 별이 내 가슴에 내리꽂히는 것처럼 환상적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동남쪽 하늘을 가로질러 천천히 반짝이며 지나가는 빛이 있다. 지구궤도를 도는 위성체일 터이다. 유성우에 소원을 비는 그 중 누군가는 실패한 우주선 우리의 나로호가 다시 쏘아 올려지기를 기원하기도 할 것이다.
글·사진 전충진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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