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박찬일

사람들아 미안하다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그대들 전부를 잊기로 한다 나도 잊기로 한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오이 당근을 파느라 감자 고구마를 파느라 양파를 파느라 시금치 마늘을 파느라

푸른 트럭에서 나는 수박 참외를 파느라 토마토 사과 귤을 파느라 배를 파느라 계란을 파느라 정신이 없다.

이면수 꽁치를 파느라 조기를 파느라 고등어를 파느라 푸른 트럭에서

푸른 트럭을 파느라 푸른 트럭만 남기고 파느라

싱싱한 야채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 있습니다 싱싱한 계란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있습니다 녹음기에 녹음하느라

녹음기를 켜놓느라 싱싱한 야채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 있습니다 싱싱한 계란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있습니다 정신이 없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정신이 없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그대들 전부를 잊었다 나도 잊었다 푸른 트럭으로 사라지려고 한다 푸른 트럭을 몰고 사라지려고 한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푸른 트럭에 있다

푸른 트럭과 푸른 트럭 속에 담긴 야채와 과일과 계란과 생선을 싱싱이라 읽는다. 그렇다면 라고 바꾸어 읽는 것도 가능하다. 싱싱한 야채는 싱싱한 싱싱이다. 그 싱싱은 음악의 싱싱이고 우리 몸의 싱싱이고 자연의 싱싱이다. 그러기에 박찬일이 푸른 트럭에 적재한 야채와 청과물은 죄다 우리 몸의 발랄한 생명력이다. 만물상 트럭에 싱싱한 생명을 싣고 다니며 이 마을 저 마을을 헤매는 것은 오래전부터 모든 시인들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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