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尾生'보다 못한 국무총리

세종시에 목매달듯 하고 있는 정운찬 총리에게 한 가지 물어보자. 초등학생도 알 만한 일제의 731 생체실험부대를 '독립군이냐'고 되물었다지만 그래도 명색 전직 서울대 총장님이시니 미생(尾生)이란 선비의 다리 밑 약속 이야기는 아시리라 믿고 던지는 질문이다.

'어리석은 약속을 지키려 목숨을 버리는 신의(信義)도 대의(大義)라 보시는가?'

행여 '독립군' 얘기처럼 '미생'을 목포 앞바다의 '매생이'로 알고 계실지도 몰라 미생의 고사(故事)를 되짚어 드린다. 미생이란 선비가 다리 기둥 밑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만나기로 굳게 약속했는데 밤이 이슥하도록 여인은 오지 않았다. 그 사이 예상하지 못한 비가 내려 큰물이 지면서 다리 위로 물살이 차올라 오기 시작했으나 약속을 지키려고 다리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기둥을 안은 채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이야기에서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고 약속을 지킨 미생의 신의를 대의(大義)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이다.

참고로 연나라의 연책(燕策)에서는 미생의 믿음을 두고 '사람을 속이지 않음에 불과한 것이다'고 했고 장자(莊子)에서는 '이름에 얽매여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어리석음'이라 말했다. 작은 신의를 지키려고 대의를 해친다면 어찌 도(道)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해석과도 맞아떨어진다. 다리 기둥 밑 여인과의 약속을 세종시에 비유하자면 충청도민들과의 신의라 할 수 있다. 반면 비가 오면 곧 물이 불어나고 물이 불어나면 빠져 죽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은 대의, 즉 미래 국가 전체의 더 큰 손실을 말한다.

지금 정 총리가 세종시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세를 보면 마치 다리 밑에서 빠져 죽은 미생지신(尾生之信=미생의 신의)을 보는 듯하다. 무슨 수를 쓰든 새 도시를 만들어서 충청도 사람들(또는 표밭)을 속이지 않았다는 소리만 듣겠단 생각으로 보인다. 거기다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것을 지금 와서 완전히 발을 빼면 주군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되니, '이름에 얽매여 대의를 가벼이 여기는 어리석음'이라 욕먹는 한이 있어도 이판사판 밀어붙이자는 심산이 역력히 보인다.

그런 정황을 보면 아마 틀림없이 그는 미생의 신의가 대의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과연 행정복합도시를 자족도시니 과학'교육'의료복합도시 같은 그럴싸한 이름으로 재포장하고 정부 부처 대신, 애꿎은 기업과 교육기관을 끌어다 채운다고 신의를 지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속이지 않음'도 아니고 대의는 더더욱 아니다. 약속대로 정부 부처를 옮기지 않을 거면 설사 기업 등을 대신 들여온다 해도 애초에 '속이지 않음'은 아닌 것이요, 대선 공약 때의 식언(食言)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면 이름에 얽매여 대의를 가벼이 여기는 어리석음이란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세종시는 진심으로 신의를 지키겠다면 원안대로 과감히 나가고, 국론 분열과 국정 효율만 떨어뜨리는 것이 분명하다면 신의를 잃고 선거에 지더라도 더 빠져들기 전에 포기해야 한다. 특정 지역의 민심과 이익은 사소한 신의이고 국가 백년대계(大計)는 대의다. 도시 이름 바꾸고 멀쩡한 대학과 기업들에게 형평성 없는 특례를 줘가며 토끼 몰이하듯 몰아넣는 권력의 입김을 불지 말란 얘기다. 그것도 외국기업이나 세계적인 명문대학, 신생 기업을 신규로 유치'창출한다면 또 모르겠다.

이제 겨우 힘겹게 유치해다 삽질을 준비 중인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타 지역의 투자기업과 인프라 동력을 빼돌려다 꿰맞추는 돌려막기 꼼수정책을 어찌 대의라 할 수 있겠는가. 타 지역의 피눈물 뽑아 선거 표 얻고 식언 면피하는 것이 행복도시 만들기인가? 그런 행복도시는 많이 탄생할수록 나라는 거꾸로 불행한 나라가 된다.

정 총리가 미생 같은 못난 샌님이 아니라면 당장 다리 밑에서 나와 국가의 대의를 바라보라. 그래도 정말 옳은 정책이라 믿는다면 신의라도 지키게 당초 원안대로 가라. 못난 미생은 대의는 몰랐으되 약속이라도 지켰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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