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 종이를 발명한 채윤(蔡倫), 해상왕 정화(鄭和) 세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환관(宦官)이었다. 이들은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3인의 환관 영웅'으로 불린다. 채윤과 정화는 어릴 때 거세해 내시가 됐다. 사마천은 38세 때 한무제의 진노를 사 궁형(宮刑)을 받았다. 궁형은 사형과 버금가는 중벌이었다.
사마천은 "백대(百代)를 지난다 해도 이 치욕은 씻을 수 없을 것이다. 창자가 하루에 아홉 번 뒤틀리고 식은땀이 옷을 흥건히 적신다"고 적었다. 사마천은 분노와 고통 속에 살면서 사기 집필에 매진,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예로부터 환관은 사회로부터 천대받았다. "세상에는 인간과 비(非)인간이 있다. 비인간은 환관을 일컫는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중국 명나라 때 굶주린 백성들이 자식들을 마구 거세하는 바람에 내시만 3만 명이 넘었다.
예전 서양에서도 다양한 목적으로 행해졌다. 3세기 그리스도교의 발레시우스파는 신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들은 물론이고 손님들까지 거세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남아를 소프라노 가수(카스트라토)로 만들기 위해 거세했는데 19세기 말까지 계속됐다. 영화 '파리넬리'(1994년 작)에서 보듯 같은 이름의 주인공(1705~1782)은 실존 인물이다.
최근 8세 여아를 참혹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거세' 논의가 한창이다. 성폭행범에 대해 화학적 거세를 통해 재범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화학적 거세는 약물로 남성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유럽과 미국 일부 주에서는 성폭행범에게 징역형과 화학적 거세를 선택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체코에서는 유일하게 수술로 물리적 거세를 하고 있는데 의외로 사법 당국이나 성폭행범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최근 10년간 조사에 따르면 재범률이 2% 이하이고 성폭행범도 장기 복역보다는 수술을 받고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에게는 타고난 '거세 콤플렉스'가 있는 만큼 성폭행 재발 방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거세'란 말의 남발은 역사'사회적인 의미로 보아 지나치게 섬뜩하고 공격적이다. 요법이나 치료 같은 용어로 바꿔 부르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박병선 논설위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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