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나비부인'의 쵸쵸상이라는 역은 내겐 참으로 두려운 작품이었다. 한번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콩쿠르에서 막 1차를 마치고 무대 뒤로 나오는데 어느 노신사가 나를 찾아와 당장 나비부인의 쵸쵸상 역으로 캐스팅하고 싶다며 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어렸던 나로선 쵸쵸상이라는 역을 맡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정중히 거절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후로도 여러 번의 좋은 기회들을 뒤로한 채 귀국을 했고, 얼마 되지 않아 나비부인의 쵸쵸상 캐스팅을 위해 일본에서 직접 온 지휘자, 연출자, 음악 코치 앞에서 그렇게 피해왔던 쵸쵸상 역의 오디션을 봤다. 서울, 부산, 대구를 거쳐 실시한 쵸쵸상 오디션에서 결국 내가 캐스팅됐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올려진 나비부인의 쵸쵸상 역은 내게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때 "넌 타고난 나비부인의 쵸쵸상이야"라고 늘 격려해 주신 마에스트로 쥬세페 줄리아노 선생님. 아직 음악을 다 익히지도 않은 내게 등장인물의 세밀한 부분까지 해석해주며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셨던 그분이 그어 주신 액팅 선을 기억하며 첫 리허설을 맞았다.
기모노를 입는 법부터 일본 여인의 걸음걸이, 손짓, 몸동작, 모두를 연로하신 예절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곁에서 지도해주셨다. 최선을 다해 배우려는 내게 "이렇게 집중력이 있는 사람은 드물게 본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며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분은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당신이 아끼는 예쁜 기모노를 나에게 선물해 주셨다.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많은 오페라를 공연했지만 일본에서의 공연 경험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소도구 하나하나까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준비해 손에 자연스레 익을 수 있었다. 스태프들과 음악 코치들이 연습이 끝나면 어김없이 내 손에 빽빽이 쓴 메모지를 쥐어주고, 숙소로 돌아가 점검하게 했던 그 세밀함을 잊을 수 없다.
쵸쵸상 역을 연습하는 시간 내내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노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쵸쵸상 역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다. 성악가가 지나친 감정에 빠져 테크닉을 놓치면 소리가 무거워져 끝까지 감당하기 힘든 오페라가 바로 이 나비부인의 쵸쵸상 역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가수의 생명은 본인의 레퍼토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던 내가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작품. 그러나 지금은 내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중 하나가 된 나비부인의 쵸쵸상을 사랑한다.
대신대 교회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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