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공미술 시대…<2>그레피티, 미지의 공공디자인 영역

원색 스프레이 色마술, 무표정 도심 방긋 웃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그래피티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그래피티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옹벽 그래피티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옹벽 그래피티
삼덕맨션 그래피티
삼덕맨션 그래피티
삼덕맨션 주변 공사장 펜스 그래피티
삼덕맨션 주변 공사장 펜스 그래피티

원색의 스프레이 페인트(래커)로 연출하는 '그래피티'(Graffiti)가 회색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 뉴욕의 화려한 도시 이면의 빈민가에서 탄생한 그래피티는 래커를 흩뿌려 낙서처럼 그리는 그림. 흑인·라틴 문화에서 출발해 해외 유명 작가들의 손을 거치며 공공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이후 정착한 국내 그래피티 역시 '거리 예술'(Street Art)로 발전하며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섰지만 여전히 비주류의 문화로 남아 있다. '공공미술의 해방구'라는 찬사 속에 '미지의 공공미술 영역'이라는 의문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책방골목에 그래피티를 입히다

21일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이 헌책을 사고 팔던 애환과 추억이 서린 곳이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가게마다 전등이 내걸린 골목 상점 앞에 수북이 쌓인 헌책도 눈길을 끌지만 정작 책방골목의 매력은 딴 곳에 있다. 한 달에 2차례(매월 첫째·셋째 일요일) 휴무일이나 폐점 후 책방골목은 일종의 야외 갤러리가 된다. 책방 셔터마다 그려놓은 그래피티 때문이다.

색색의 래커칠 작업이 더해진 파란색 철제 셔터에는 사람의 얼굴이 등장하기도 하고, 꽃이 피기도 한다. 귀여운 얼굴의 만화 캐릭터가 사람을 반기는가 싶더니 익살스러운 얼굴이 웃음을 자아낸다. 올 5월 국내 유명 작가 20여명이 참여해 완성한 작품들이다. 이제는 전국적인 명물로 책방 골목의 이름을 드높였다. 구경꾼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부산시는 성공적인 결과에 힘입어 이달 1일에도 유명 작가들을 초청해 그래피티 체험 문화거리 행사를 열었다.

부산에는 부경대 용당캠퍼스 내 도서관 가는 길 옹벽(273m), 일명 '핀담'에도 그래피티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 주최로 지난해 10월 열린 캠퍼스 벽화 공모전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전국 29개팀 80여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그래피티와 타이포그래피(글그림)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회색빛 시멘트 담에 색을 입혔다.

◆아직 낯선 대구 그래피티

23일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신천대로를 따라 들어선 옹벽이 갖가지 작품으로 옷을 입었다. 예술적 감각으로 표현한 문자와 다양한 종류의 모자를 눌러쓴 사내들의 표정이 이채롭다. 사람들이 다니는 시장 바닥에는 공손히 모은 두 손이 사람을 떠받든다. 대구 중구청이 대구미술비평연구회와 함께 올 상반기 진행한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 - 별의별 시장'에 참가한 그래피티 작가들이 남긴 작품들이다.

대구 그래피티 작품들은 왠지 낯설지만 2년 전 첫 선을 보였다. 대구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삼덕맨션이 첫 작품이다. 재개발 추진이 지연되면서 수년간 방치된 이곳은 그패피티 덕택에 도심 흉물로 전락하지 않았다. 2007년 대구시 주최로 열린 '분지의 바람' 프로젝트로 텅 빈 삼덕맨션 벽면에 그래피티 작업이 펼쳐졌다.

삼덕맨션 그래피티 작업은 당시 큰 화제가 되면서 전국에서 몰려든 미술 학도들의 견학 코스가 됐다. 한 노점상은 "외국인을 비롯해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며 "도심 속 밋밋한 공간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피티 집단 게릴라리그(GL)의 배두호씨는 "삼덕맨션 작업은 그래피티 작가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다"며 "미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예찬했다.

1990년대 후반 힙합 문화 도입과 함께 국내에 전해진 그래피티는 아직 마니아 문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빈민촌, 갱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는 하위 문화라는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덧 '거리 예술' 수준으로 발전한 그래피티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 뉴욕에서도 기성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가 함께 참여하는 예술의 한 장르로 도시 이미지 개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의 홍대 주변이나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의 사례는 그래피티도 공공미술로써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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