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인기를 누리는 트로트. 한때 '뽕짝'이라는 비하와 일본 '엔카'의 아류라는 폄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나라 서민의 이야기와 가난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악 장르다.
10년 전만 해도 트로트는 구세대나 선호하는 구식 음악, 단순하기 그지없는 박자,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가사라는 식의 '낡아빠진 노래 장르' 취급을 받았다. 경제적으로는 하층민, 세대로는 중장년층 이상, 예술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촌스러운 노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트로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나이 어린 가수 지망생 중에서도 '트로트 가수 지망생'이라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트로트 전문 기획사가 등장했고, CD 판매량과 온라인 저작권료 발생 수익도 크게 늘어났다. 촌스러운 장르라는 인식은 사라지고 모든 세대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친근한 음악 장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음악 역시 정치구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분화, 융합해왔다. 이 책은 오늘날 트로트가 있기까지 '트로트의 부흥기' '트로트의 수난기'를 연대기 순으로 살펴보면서 트로트의 정체성을 파헤치고 있다. 전문적 영역의 음악과 달리 서민 음악들이 대체로 기록보다는 구전의 형태를 띤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의 '트로트 정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지은이는 '트로트가 엔카의 아류'라는 비판에 대해 "기성 문화에 저항하던 젊은이들과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의 일방적인 비난으로 트로트가 매도됐다"며 "당시 논쟁은 트로트 음악의 생산자와 수용자가 제외된 논쟁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뽕짝 논쟁'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트로트 음악 창작자, 가수, 향유자들의 입장에서 트로트 음악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특히 지은이는 일본의 '엔카'라는 용어가 일본 대중음악에 공식적으로 출현한 시기는 1973년 이후로, 오늘날 '엔카'로 분류되는 일본의 대중 음악은 '류코카'(유행가)로 불렸음을 명시하고 있다. 또 미국의 '록'이나 '컨트리 뮤직', 한국의 '트로트'가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음악 장르로 자리 잡으며 통용된 데 반해, 일본의 '엔카'는 1960년대 이후 일본의 국가적 개입을 통해 정립된 전통 가요 장르라는 점을 지적한다.
책은 우리나라 트로트를 4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제1기는 트로트의 형성기로 1920년대 중반에서 45년까지, 윤심덕의 '사의 찬미'에서부터 라이브 공연의 성황, 라디오 매체를 통한 유행가의 파급력이 높아지는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는 트로트의 성숙기로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이다. 한국 전쟁, 미8군 무대 등으로 트로트의 색채에 전쟁과 미국식 음악이 묻어 있다. 제3기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이른바 트로트의 지역화 시기로 포크음악, 디스코 댄스, 발라드 등 외국 음악이 밀려오면서 트로트가 점차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으며 명맥만 유지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4기인 1990년대 이후는 트로트의 전통화 시기로 트로트가 대중적인 장르로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다. 서민의 삶에 깊이 스며든 트로트는 한국 고유의 정서인 한과 흥의 미덕, 동시대 한국인의 집단 정체성, 삶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256쪽, 1만6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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