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J.D.샐린저. 1951.
이 소설은 기성세대의 오류와 허위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청소년뿐 아니라 그 당시 저항문화의 확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16살 고등학생 홀든은 적응장애로 4번이나 전학을 했지만 결국 거듭되는 낙제와 교칙위반으로 퇴학을 당한다. 부모님을 대할 낯이 없어진 홀든은 무작정 기숙사를 빠져나온다. 크리스마스 추위에 떨며 거리를 쏘다니며, 길거리 창녀도 만나고, 돈도 빼앗기고, 폭행도 당한다.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며 술도 마셔보지만, 점점 더 우울해질 뿐이다.
순수했던 아동기를 지나 오염된 어른들의 세상으로 가기 위한 청소년기의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라고 하기엔 너무나 극단적이다. 거리에 버려진 가래침이나 담배꽁초만 쳐다봐도 세상이 싫어진다. 여학생들이 멍청한 녀석들과 결혼할 것을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엉터리 같은 영화를 보고 눈물이나 흘리는 멍청이들이 다 싫어진다.
세상은 지독한 속물들로 득실댄다. 순수한 존재라고는 여동생 피비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동생 엘비뿐이다. 3년 전 동생이 죽던 날, 홀든은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부수고 손 때문에 입원하는 바람에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시를 좋아하는 순수한 아이였는데, 신은 왜 그렇게 착한 아이를 죽게 내버려두었을까. 동생을 비 내리는 묘비에 버려두고, 어떻게 우리끼리 맛난 식사를 하러 갈까. 죽음의 공포에 울부짖으며, 죽은 동생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동생은 죽었지만 홀든은 동생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 애도의 슬픔은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먼바다에 닿아야 한다. 그래야 상처를 가슴에 안고 현실에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다. 홀든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결심은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에서 비롯된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거지."
홀든은 어른들의 모순에 대해 날카롭게 비난하고 있지만, 부모와 화해하지 않은 채 마음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서부로 떠난다는 결말은 투정만 부리다가 성장을 멈추어버린 미숙아나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진정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없다. 파수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켈은 미성숙한 인간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고, 성숙한 인간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노력과 인내로 일구어낸 세월과 실력이 있어야 누군가를 지킬 자격도 있다. 홀든은 이 아니라 '호밀밭의 루저'(loser)가 될 수밖에 없다.
(마음과 마음 정신과 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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