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희 시인이 3번째 시집 '길게 혹은 스타카토로'를 출간했다. 수필가이기도 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와 수필의 경계를 허물없이 넘나든다. 형식은 시처럼 짧지만 '완전한 산문' 같은 느낌을 주는 시도 있고, 서술형으로 끝나는 시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 안에 시적 상징이 없을 것이라고 예단하면 안 된다. 시인은 다만 꼭 '시적 상징 언어'로 꾸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남주희 시인은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부 소속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을 13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어린 시절 침 발라 가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편지를 썼던 '정직한 글쓰기' 정신이 그녀의 시 작품에도 배어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월남전 영웅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까르띠에 명품 매장 앞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노숙자, 한때는 불끈불끈한 핏줄을 자랑했겠지만 이제는 군살 출렁대는 행려인,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전설을 간직했지만 이제는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는 남자….
이 시집에는 힘든 시간의 강물을 기어코 건너온 사람이 있다. 그는 실패한 인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그를 어디에선가 만났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그를 모른다. 시인은 바로 그 사람들, 그들의 삶과 현실을, 그들의 본성을 에둘러 이야기한다. 시인이 눈으로 보았을 수도 있고, 오랜 체험이 가르쳐 준 직관이 그것을 생각하도록 거들었을 수도 있다.
남주희 시인은 길 위에서(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해 노래한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오늘 그들을 만나기 이전, 그가 머물렀던 곳을 굽어본다. 그래서 그녀의 시에는 '세월을 견뎌온 자의 주름'이 그어져 있다.
'산수유 아래 덕지덕지 붙은 내 무게/ 묻지 마시길/ 부여받은 생 업수이 여기지 않고/ 새처럼 가볍게 날자 했다/ 야윈 손으로 조몰락거려/ 산미나리처럼 푸르게 데쳐낸/ 문장 몇 토막으로/ 은갈치 같은 저녁을 차린 날' -풍장(風葬)- 중에서. 시집 제목 중 '스타카토'는 연주에서 한 음표씩 끊어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143쪽, 8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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