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어 몇 번이고 죽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그리 쉽게 끊어지던가요. 명이 붙어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데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24일 만난 김태자(53·여·대구 달서구 월성동)씨는 연방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큰아들은 재생불량성빈혈과 윌슨병으로 투병 중이고, 작은아들은 형에게 3차례 골수이식을 해주면서 만성 간염에 걸려 직장마저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김태자씨는 자궁암으로 투병 중이다.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비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운 처지에 환자 세 명의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는 도무지 답이 보이질 않는다. 김씨가 내놓은 두툼한 봉투 속에는 여기저기서 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장과 압류예고장이 수십장 들어있었다.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 고통을 호소하던 김씨의 큰아들 한경(32)씨는 2005년 재생불량성빈혈을 진단받았다. 그리고 2007년부터 3차례에 걸쳐 동생 한훈(28)씨의 골수를 이식받았다. 하지만 한경씨의 병은 계속 악화되기만 했다.
김씨는 "한경이는 혈액형이 RH-형이라 한훈이의 골수가 50%밖에 일치하지 않는다"며 "병세가 호전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골수를 기증받아 이식해야 한다는데 그 비용이 수천만원에 달해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김태자씨가 자궁암 진단을 받은 것은 아들이 골수이식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김씨는 "자꾸 배가 아파 병원 인근 산부인과 의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아들 치료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그만 자신의 병은 잊고 살았다"며 "검사 결과 자궁암으로 나타났지만 병원 측에서 연락할 방도가 없자 경찰서에 수소문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왔더라"고 했다.
그 길로 김씨 역시 아들과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중소기업 회사원으로 빠듯하게 생활을 유지해오던 한훈씨는 어머니와 형의 병원비를 대느라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카드 대출은 물론이고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려야 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병원에서는 보증금부터 요구했고, 치료비를 내지 못하면 퇴원을 하지 못해 병원비만 늘어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한훈씨는 일자리마저 잃었다. 형과 어머니가 쓰러지면 간호를 하느라 회사를 못나가기 일쑤인데다 골수이식으로 갑작스레 일주일 이상의 휴가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잦아지자 회사에서는 사직을 요구했고 이제 한훈씨는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한훈씨는 "형에게 골수이식을 해 준 뒤 만성간염을 얻게 됐는데 증세가 심해져 간경화까지 진전된데다, 앞으로도 형과 어머니가 어떻게 될지 몰라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취직을 해도 오히려 손해가 막심해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 만약 한훈씨가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게 되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면서 각종 의료비 경감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에 차라리 노는 편이 득이 되는 웃지못할 상황이다.
한훈씨는 "이제 돈이라면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몸서리를 쳤다. 어머니와 형이 번갈아가며 수술을 받는 동안 한훈씨는 난방이 되지 않는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덜덜 떨며 겨울을 나야 했다.
한훈씨는 "얼마나 추위에 떨고 살았는지 지금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라며 "그때 소원이 난방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집에서 뜨끈한 라면 하나 끓여 먹어보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제 임대아파트를 얻어 냉방에서 자는 고통은 면하게 됐지만 이들 모자의 '추운 겨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훈씨는 "어제 저녁만 해도 어머니가 배가 아프다며 쓰러져 결국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며 "형이 골수이식을 받아 완쾌만 돼도 다시 '희망'을 꿈꿔 볼 수 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한 정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고개를 떨궜다.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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