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밤늦게 마닐라에 도착해서 버스 터미널 부근에 있는 소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마닐라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볼 요량으로 무조건 7페소(약 200원)만 지불하면 되는 지프니를 타고 시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앙헬레스를 가기 위해 빅토리아 라이너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약 4,000원 정도의 금액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깔끔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앙헬레스는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80km 거리지만 도심을 빠져나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약 2시간 이상 걸려 앙헬레스에 도착했다. 이곳 다우 버스 터미널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사방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라서 항상 많은 사람들과 차로 붐빈다.
지난날 미군의 중요 공군 군사기지였던 앙헬레스의 클락은 피나투보 화산의 대폭발 이후 겁을 먹고 미군이 철수한 이후에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지금은 경제 특별 구역으로 지정돼 급속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적잖은 지원과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필리핀에서도 치안이 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여기는 필리핀 골프의 메카로 유명하며, 크고 작은 골프장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36홀의 미모사 골프장은 유명한 넬슨, 하워즈가 디자인한 아시아 최고의 골프 코스로 미군이 작심하고 만든 아름답지만 까다로운 코스로 유명하다. 가는 길도 제주도 가는 길만큼 쉬워졌다. 인천에서도 클락 공항으로 바로 연결하는 노선이 많다.
바로 경비행기 투어를 위해 클락 프리폴트 존으로 향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한줄기 내릴 것 같은 날씨이고, 바람도 제법 세게 불어 과연 비행기가 뜰까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짧은 여행기간에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기가 어려울 것 같아 나지막한 하늘에서나마 나의 욕심을 채우기로 하였다.
이번 여행은 기간이 짧다. 그래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택시를 타고 10여분을 달리자 도로를 벗어나 우측으로 유턴을 하더니 비포장 길로 접어들자 바로 목적지에 도착 했다.
수십대의 4~6인승의 경비행기가 전쟁터로 금방이라도 출격할 듯일렬로 쭉 도열해 있다. 사무실로 들어가 투어에 관해 묻자 지금은 날씨 상황이 좋지 비행기가 뜰 수 없다고 한다. 이상하게 오는 날부터 꼬이는 느낌이다. 어젯밤 마닐라에서 호텔에서도 고장난 금고 키, 온수가 안 나오는 등으로 두 번이나 방을 바꾼 후에 잠을 청한 기억이 떠오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피나투보 화산의 진귀한 풍경은 접어야 할 것 같다.
오후에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바바람이 몰아친다. 짧은 기간의 여행객인 나로서는 속상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서 가장 규모가 큰 팍콜 카지노에 갔다. 호텔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전체가 슬롯머신으로 채워져 있고 2층은 주로 테이블 게임으로 바카라 위주로 되어 있다. 원래 카지노는 좋아하지 않지만 폭우에 딱히 할 일도 없어 1층 슬롯머신에서 5만원 정도 잃고 밖을 나오니 여전히 빗줄기가 나의 발을 묶는다.
어차피 따든 잃든 10만원 정도를 생각하고 들어 왔기에 이번에는 2층으로 올라가 바카라판에 끼어들었다. 운이 억세게 좋은건지 불과 5분여 만에 20만원을 땄다. 1층에서 잃은 5만원을 제하고도 15만원이나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일어나 바로 칩을 환전하여 트라이시클을 타고 앙헬레스에서 유명한 중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2인승 삼륜 자동차이다. 이곳에서는 지역의 큰손들에 의해 트라이시클이 독점 운영된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에게 가격 횡포가 심하다. 가까운 거리에도 무조건 100페소(약 3,000원)를 부른다. 물론 어느 정도 깎는 것도 가능하지만 짜증스러울 때가 많다.
나는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의 충고로 '그냥 목적지만 말하고 내릴 때 50페소만 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아무 말 없이 받기에 적으나마 경비를 줄일 수 있었으며 탈 때마다 짜증스런 입 시름을 피할 수 있었다.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요리와 독한 중국술을 몇 잔 걸치고 나니 약간의 취기와 화려한 네온사인이 나를 그냥 호텔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모습이 밤이 되면 소돔과 고모라로 변하는 환락의 도시란 게 실감난다.
앙헬레스 필즈 에비뉴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거리이다. 약 15,000명의 바바에와 150여개의 바로 형성되어 있는 필즈 에비뉴는 각 바마다 매일밤 이벤트성 행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황 병 수(영남대병원 방사선사, hbs498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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