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나무도 병이 드니

나무도 병이 드니

정철

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라도 쉴 이 없다

호화히 섰을 제는 올 이 갈 이 다 쉬더니

잎 지고 가지 꺾은 후는 새도 아니 앉는다.

"나무도 병이 들면 정자나무라도 그 아래서 쉬는 사람이 없다 / 잎이 무성하게 피어 호화롭게 섰을 때는 오고 가는 이들이 다 쉬더니 /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꺾인 후에는 새마저도 앉지 않는다." 로 풀린다.

송강 정철(1536~1593)의 작품이다. 국문학사에서 윤선도 박인로와 함께 3대 문인으로 꼽히며 '송강가사'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등의 작품을 남긴 가사문학의 대가다. 그가 남긴 가사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시조 작품도 100여수가 넘는데, 국문시가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1561년 진사시에, 다음해에 별시 갑과에 장원 급제해 지평이 되었고, 예조판서와 우의정 등을 지냈다. 정치가로서의 삶을 사는 동안 예술가로서의 재질을 발휘,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이다.

강직하고 청렴하나 융통성이 적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1575년 심의겸과 김효원 사이의 일로부터 시작된 동인과 서인의 분쟁에서 서인의 편에 가담, 서인의 거두가 되었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벼슬의 부침이 심했고 또 벼슬길에 들고 난 일도 많았다. 그의 그런 이력이 이 작품을 매우 절실하게 읽히게 한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 어느 때라도 힘 있는 곳이나, 돈 있는 곳으로 해바라기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이기적이요 부도덕한 경우가 많다. 그들의 욕구 안에는 언제나 득이 되지 않으면 떠나는 이른바 변절의 생리가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 속담에도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거나 "정승 댁 개 죽음에는 문상객이 들끓어도, 정작 정승 죽음에는 문상객이 뜸하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인간이 지켜야 할 의리와 도덕조차도 권력과 금력에 휩쓸려 버리는 세상의 야박한 민심을 개탄한 작품이다. 이런 일이 어찌 그 옛날에만 있었겠는가. 지금이 오히려 그때보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아닐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먼저 뒤돌아보아야 할 일이지만 씁쓸하기 그지없다. 경로사상이 희박해지고 노인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이즈음엔 이 작품과 같은 내용의 시를 쓰는 이들이 참 많고 많으리라.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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