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종시 원안추진 약속 죄송·후회" 고해성사

27일 밤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 진솔한 입장을 밝히며 국민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다. 취임 이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미국발(發) 경제위기, 전직 대통령의 잇단 서거 등 '험로'를 거치면서 다져온 추진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내년 사실상의 집권 후반기 진입을 앞두고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단호하고 원칙 있는 국정 운영의 기조를 직접 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의 뜻을,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서는 강한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분명히 함으로써 정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각종 정책·개혁 과제와 함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미래비전 현안들에 대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임기 말까지 국정 장악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내포돼 있다는 분석이다.

■세종시, 정치논리 탈피 촉구

이날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세종시 문제였다. 이에 대한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민은 물론 여야 정치권을 동시에 향했다. 먼저 국민에 대해선 지난 대선 기간 세종시 원안 추진 약속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솔직한 표현을 써가며 충청도민을 비롯한 국민의 혼란을 부추긴 데 대한 '고해성사'를 했다.

정치권에 대해서는 각자의 이해타산에 의해 세종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데 대해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판단'과 '국가적 차원에서의 고민'을 촉구했다. 특히 야당에 대해서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적당한 타협은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여권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에는 주류, 비주류가 없다"면서 최근의 내부 불협화음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대선 과정에서 '표'를 의식한 발언으로 현재의 세종시 논란이 불거진 점을 인정하면서 더 이상은 정치논리에 의해 이런 국정혼란이 재현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인식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며 국민에게 정부를 믿어줄 것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입장 표명은 정치적으로 가깝게는 내년 지방선거, 길게는 차기 대선까지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뜨거운 감자'인 세종시 문제를 일단락 짓지 않고서는 정권 차원의 부담이 심각해 질 수 있다는 절박한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국민이 이 대통령의 이날 입장 표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국정 장악 의지 표명

이 대통령은 이날 각종 현안에 대해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하고, 때론 비판과 논란에 적극 반박하면서 국정 장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취임후 세번째 국민과의 직접 접촉인 이날 방송에서 이 대통령은 또 국정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통해 당면한 위기 극복은 물론 위기 이후 '선진일류국가'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특히 4대강 살리기 사업, 내년도 예산 등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는 지난 대선기간 주장했던 '경제 대통령'의 면모를 다시한번 보여주겠다는 듯 구체적인 수치와 자료를 제시했다. 세종시 수정,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현안은 물론 개헌, 행정체제 개편, 남북정상회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등 산적한 숙제들을 순조롭게 풀어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국민적 협조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는 현실 인식을 감지케 하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이른바 '친(親)서민' '중도' '실용' 기조를 유지해 가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이른바 '부자 감세' '친기업' 논란 등에 대해 "그런 오해가 있으나 저는 본능적으로 그런 쪽이 아니다"면서 보금자리주택, 소액금융지원(미소금융), 신개념 학자금 대출 등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를 슬로건으로 내건 현 정부의 서민정책을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이는 서민, 중산층을 끌어안음으로써 진정한 사회적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앞으로 남은 3년여의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관건이라는 판단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또 미디어법 논란에 대해서는 "방송장악이나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은 공정보도만 하면 된다"고 지적하고,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장 정치적으로 해야 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북핵 및 인도적 문제 해결을 전제로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대통령과의 대화를 계기로 향후 정국이 '해빙기'를 맞을 지는 미지수다. 세종시 문제, 4대강 살리기 사업, 국회 예산안 처리 등을 둘러싼 여야 충돌이 불가피한 데다 최근에는 각종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이 대통령으로서는 순탄치 않은 연말연시가 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 속도 빨라지나

이 대통령이 세종시 건설계획 수정을 천명함에 따라 정운찬 총리를 비롯한 정부의 세종시 행보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 총리는 28일 오후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 민간위원들과 함께 세종시 건설사업을 총괄조정하는 충남 연기군 소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찾아 세종시 지역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는다. 정 총리가 세종시를 방문하는 것은 지난달 30일에 이어 취임 이후 두번째이다.

이번 방문은 민간위원들이 세종시 대안(代案) 마련에 앞서 직접 세종시 현장을 살펴보고 주민 의견을 청취하자고 제안해 이뤄졌다. 정 총리와 민간위원들은 간담회 이후 오송생명과학단지 건설현장을 방문한다. 민간위원들은 정 총리와는 별도로 이날 오전 대덕특구지원본부를 방문하고 밀마루전망대에서 세종시 현장을 조망하는 등 세종시와 주변의 산업, 정주환경, 개발여건 등도 직접 살필 계획이다.

정부는 늦어도 내달 중순까지 세종시 대안(代案) 제시를 위해 민관합동위원회 등 공식기구의 활동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세종시 대안 심의기구인 민관합동위는 이르면 내주부터 그동안 주 1회씩 열던 전체회의를 주 2회로 늘릴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관합동위는 또 내주 초 인터넷 홈페이지(www.sejongcity.or.kr)를 개설하고 토론방, 제안방 등을 통해 여론 수렴에도 적극 나서며, 최종 대안이 마련되면 공청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정 총리는 최근 전직 국무총리(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의 등 사회 지도층과 재계 인사들을 만난 데 이어 내주에는 국민원로회의 등 각 분야 사회 원로들과 잇따라 회동키로 하는 등 세종시 수정을 위한 외연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어 내달 2일에는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관훈토론회에도 참석해 세종시 수정 추진 현황을 설명하고, 최종 대안이 마련된 이후에는 정치권 인사들을 잇따라 방문해 이해와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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