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93]검단사설경(黔丹寺雪景)

#검단사설경(黔丹寺雪景)」/정염

山徑無人鳥不回 산길에는 사람 없고 새도 없나니

孤村暗淡冷雲堆 외로운 마을 어둑어둑 찬 구름이 쌓였다

院僧踏破琉璃界 눈 내린 유리 세계를 중은 밟고가

江上敲氷汲水來 강의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 오네

롱테이크의 어안렌즈에 잡힌 풍경이다. 절과 산길과 마을, 그리고 얼어붙은 강이 광각의 렌즈 속에 들어온다. 유종원의 「강설(江雪)」()처럼 어두워진 겨울 산길과 마을은 인적 끊기고 새조차 날아다니지 않는다. 어둠의 배경엔 설경, 모든 것이 흑과 백의 테두리 속에 있다. 흑백의 대비야말로 얼어붙은 겨울 풍경에 맞춤한 색조이다. 그 흑백의 틈새로 꼬물꼬물 움직임이 있으니 산길을 내려와 강의 얼음을 깨고 물을 길러 온 스님이다. 스님의 동작이 고요한 것은 이 흑과 백의 조심스런 균형을 깰까봐 저어한 때문일까. 간다는 보법에서 화자 역시 이 흑과 백의 균형을 긴장으로 읽고 있다. 눈 덮인 세계가 유리라는 감수성이 바로 팽팽한 긴장을 지시하는 수사이다. 단 한순간 그 청명한 세계를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는 발자국 소리들. 아니 명징한 소리는 강의 얼음을 깨는 그 소리뿐일지 모르겠다. 얼음을 깨는 소리는 그 세계가 얼마나 고요하고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가에 대한 증거이다. 먼 곳 마을까지 고생스럽게 물을 길러 오는 스님의 행보는 그대로 겨울 추위를 전달해주면서 동시에 수행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흑백 사이 고도의 정신적 긴장이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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