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취학연령 낮춘다고 출산율 높아지나

요즈음 우리나라의 장래에 대한 우려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일 것이다. 이에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최근 수립하여 발표한 저출산 대책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임은 당연하다. 이 대책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현행 만6세에서 만5세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 시책의 기대 효과는 학령전 교육을 위하여 자녀에게 들이는 돈을 줄여 양육비를 경감시키고 청년들이 조기에 사회진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이를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라 부르고 있다.

문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에 의한 새로운 정책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계 관료들이 지난 수십년 간 국민들 앞에 풀어 놓은 새로운 정책들이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을 '개선'(?)한 것을 보아 온 우리로서는 이번 정책에 대해서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무릇 새로운 정책을 검토할 때는 그것이 가져다 줄 이익과 손해를 면밀히 고려해야 할 것인데, 미래기획위원회가 말하고 있는 이익은 논거가 부족하고, 말하지 않고 있는 손해는 심각하다.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낮춤으로써 유아 시기의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극심한 경쟁을 고려하면 이는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발달이 충분하지 않은 유아들에게까지 초등학교 교육에 대비하기 위한 경쟁이 확대되어 이는 결국 가정에서 사교육비를 지출하기 시작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청년들, 특히 남자들의 사회 진출이 외국보다 늦은 이유는 남북의 분단과 대치라는 특수상황 때문인 것이며 이는 우리가 떠안고 가야할 성스런 의무이지, 조기입학이라는 편법으로 회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조기에 입학하여 충분한 교육을 받고 능력을 갖추어 사회에 일찍 진출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어찌 세상 일이 그리 욕심대로만 되겠는가? 우수한 인재의 배출은 졸업장을 1년 빨리 준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병폐로 흔히 지적되는 '빨리빨리 증후군'을 여기서도 보는 듯하다.

아주 어리석은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5세가 아닌 4세에 초등학교에 취학시키는 것은 어떠한가? 삼척동자라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발달이 미숙하여 수학할 준비가 안 된 유아를 취학시키면 정상적인 교육 성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곽 위원장은 "아동들의 신체발달 상황을 고려하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학교 교육은 신체발달만 되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능 및 정서적'사회적인 성숙이 이루어진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우리로서는 이 설명이 미심쩍기만 하다.

과거에는 초등학교 조기 입학이 사회적으로 유행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입학 연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을 유예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의 요구와 교육 현실이 이 제도의 실패를 예언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치게 비관적인 상상일까? 세계 경제력 상위 20개국의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보면 만 5세 입학은 단 1개국밖에 없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자체에 가치를 두지 않는 한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낮출 이유는 없다.

초등학교 취학 연령 1년 하향은 지난 노무현 참여정부 때 연구, 추진되다가 폐기한 안이다. 그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기에 이번 정부에서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리 자신있게 추진하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저출산 문제의 대응책으로 사교육비를 비롯한 양육비 부담을 줄여 젊은 부부들이 자녀를 많이 낳을 수 있는 교육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모든 국민이 동의한다. 그러나 입학 연령을 낮추는 것은 이에 대한 답이 아니다. 그보다는 학령전 자녀의 보육과 교육을 위한 양육비 전면 보조 등의 정책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권민균 계명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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