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깊은 생각 열린 교육] 가르치지 말고 꿈꾸게 하자

논어의 팔일(八佾)편을 보면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한 뒤에 한다는 의미이다. 흰 비단 위에 오색을 칠해야 그림이 더욱 빛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가르치는 것보다 꿈꾸게 하는 것이 먼저다. 꿈이 있는 학생은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안다. 이유를 알면 스스로 공부한다. 스스로 하는 공부는 재미있고 즐겁다. 당연히 성과도 좋고, 자존감도 높아져 학교생활이 즐거워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반면 가르침이 먼저인 학생은 자신의 꿈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연히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이유를 모르는 학생은 수동적으로 따라만 한다. 부모가 하라고 하니 하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 공부한다. 열심히 공부하면 상위권 대학에 가겠지, 상위권 대학에 가면 미래가 보장되겠지 하는 공허한 환상만 갖는다.

혹자는 요즘 학생만 그런 것이 아니고, 과거 학생들도 그랬다고 말한다. 기성세대 역시 그렇게 성장해 왔는데도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10대들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이 사회에 나올 때쯤이면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사회구조적으로 90%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징후들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 졸업생 가운데 45%만 정규직 일자리를 얻고, 이들 중 절반은 1년 안에 그만두고, 다시 그 절반은 30세가 되기 전에 그만둔다고 한다. 평생 직장도 없고 평생 직업도 없어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여기에 교육이 담당해야 할 시대적 책무가 있다. 교육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삶을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 설계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상위권 10%가 될 아이들에게 수월성 교육과 함께 사회 책무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들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청렴하게 살면서 사회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고민하게 해야 한다. 90%에 대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정신적으로 만족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이 모인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이다.

학창 시절에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 점수에 맞추어 자신의 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해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서도 가르치기 전에 끊임없이 묻자. 너의 꿈은 무엇이냐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꿈을 위해 노력하다 난관에 부딪칠 때 어떻게 하겠냐고? 나아가 꿈을 이루면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이냐고!

꿈을 이룬 사람은 행복하다. 여기서 한 걸음만 이타적 방향으로 내디디면 위대한 사람이 된다. 세종대왕, 간디, 슈바이처 등 역사적 위인들은 모두 꿈을 이루고 그것을 이타적으로 나눈, 꿈 너머 꿈을 꾼 사람들이다.

우리 학생들이 행복한 사람을 넘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꿈 꾸게 하자, 꿈 너머 꿈을 꾸게 하자. 월트 디즈니가 말하지 않았던가. "꿈을 꿀 수 있으면 할 수도 있다"고.

한원경(대구시교육청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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