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마패

'암행어사 출두요'란 대목에서 춘향전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 사또를 징벌하고 춘향을 구해 내는 역전 장면은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 통쾌함을 안겨준다. 권선징악이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이기도 하지만 권력에 대한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때문일 수도 있다. 박문수는 암행어사의 대명사로 꼽힌다. 암행어사로 활동한 기간이 1년 미만에다 역사 기록도 적지만 암행어사의 이야기는 대부분 박문수의 활약으로 여긴다. 임금 영조와 마음으로 통한데다 권력층에 맞섰기에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버팀목으로 으레 그를 떠올린 듯하다.

암행어사는 정의의 사도였다. 멀리 떨어진 임금이 보낸 희망의 메시지였다. 암행어사의 주요 징표는 마패였다. 역참의 말과 역졸을 부릴 수 있는 신분증이었지만 임금을 대신하는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임금의 특명 관리였지만 암행어사는 주로 하급 벼슬아치들이 맡았다. 연줄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임금의 명령만 들으라는 의미다. 그래서 암행어사에게는 말 세 마리를 쓸 수 있는 3마패가 주어졌다.

얼마 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발언으로 마패가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직원 모두가 어사가 된 기분으로 일하고 위원장이 이재오라는 사실을 마패로 생각해 달라"는 취임사 때문이었다. 말의 본의를 모르지 않지만 마패가 주는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생뚱맞은데다 위원장 본인이 주목받는 정치인이라는 게 배경이 됐다.

검찰이 체포나 압수수색 등 수사와 관련한 공무 수행을 할 때는 신분을 드러내는 배지를 달기로 했다. 검찰 공무원에게는 사명감을, 국민에게는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배지는 수사와 형 집행을 하는 검사와 수사관들만 달 수 있으며 수사 분야에서 다른 보직으로 옮기면 반납하기로 했다.

경찰과 달리 제복이 없어 신분을 드러내 줄 상징이 필요하다는 검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배지를 두고 '현대판 마패'라는 시선도 있다. '배지가 없어 수사를 못 했느냐' '형식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배지는 신분을 드러낸다. 그래서 배지를 다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보는 이에게는 배지가 지닌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검찰의 배지가 정의와 신뢰를 되새김하는 소임을 하느냐 여부는 결국 검찰의 몫이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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