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내가 거울 앞에 앉아 화장하기를 바랐다. 아내는 거울이 아니라 창문 너머 먼 데를 보고 싶어 했다. 아내는 붓을 들어 시를 쓰고 싶어 했고, 남편은 아내의 목소리가 문지방 넘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천재적 재능을 타고났던 아내는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시를 썼고, 그녀가 쓴 시는 문지방을 넘고 담을 넘어 거리를 쏘다녔다. 장원급제하며 화려하게 정치 무대에 등장했던 남편은 관료로 출세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적들은 그의 아내가 쓴 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며 공격했다. 남편은 저잣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아내의 시에 상처 입었고, 아내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하기만을 바라는 남편의 사랑에 상처 입었다. 시인이기를 원했던 여자와 생활인이기를 원했던 남자의 불화는 거기서 시작됐다.
소설 '몽혼'은 시와 일상(남편의 사랑) 중에 어느 한 가지도 포기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 이옥봉과 '시와 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외쳤던 조선의 엘리트 관료 조기원(실제 이름은 조원)의 불화를 바탕으로 시인과 일상인의 충돌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묻는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일상인의 삶은 어떻게 시인의 꿈을 꺾는가. 끼니와 아무 짝에도 상관없어 보이는 시는 어떻게 일상의 밥상을 엎는가.'
여기서 '시인의 꿈'을 꼭 시 쓰는 사람의 시적 욕망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시(詩)'란 한 사람이 인생을 걸고 좇아온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고, 설령 죽을 길일지라도 걷고 싶은 길일 수도 있다. 밥그릇과 무관하게 매료된 무엇일 수도 있다.
지은이는 "시인은 바람을 따라 끊임없이 흐름으로써 존재하는 모래와 같고, 일상인은 한 장소에 뿌리 내려야 살 수 있는 풀과 같다. 한 자리에서 만난 풀과 모래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내가 확인했던 것은 한 자리에서 만난 풀과 모래의 불화와 후회뿐이었다. 시인과 일상인은 만나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끼니(생활)도 중요하고 시(이상)도 옳다. 사람은 밥도 먹어야 하고 시도 써야 한다. 어느 한쪽이 틀렸다면, 그래서 한쪽이 일찌감치 사멸했다면 일상인과 시인의 불화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소설 '몽혼'은 양쪽 모두 옳기에 불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 양쪽 모두 정당하기에 어느 쪽도 사멸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 그 쓰라린 현실을 삶의 이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살이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몽혼'은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과 당대 최고 엘리트 조원(당시 조원은 진사시에 장원, 이율곡은 생원시 장원했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문장에 있어서 조원은 율곡보다 한 수 위였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또 꿈을 가졌으나 그 꿈을 펼치는 대신 쓰라린 생활인의 길을 걸어야 했던 사람, 한 여인을 사랑했으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선비 송정주의 절망을 한 축으로 전개하고 있다. 소설과 함께 이옥봉의 시 33편을 전제하고 쉽게 해설한 시집 '이옥봉의 몽혼'(하응백 지음)도 함께 출간돼 흥미를 더한다. 소설 '몽혼' 292쪽, 1만원, 시집 '이옥봉의 몽혼' 156쪽, 1만원.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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