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매번 다니던 산행마저 접고 강원도 횡성을 다녀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 어쩌면 이것이 오디오를 바꾸는 마지막이기를 바라면서 중고 프리앰프를 사들고 돌아왔다. 오디오 바꿈질은 원음의 소리를 찾겠다는 변명으로 시작되곤 하지만 결국 그것이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 다름 아닌 것임을 깨닫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청각적으로 완전함을 추구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시각적인 자기만족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해서 그들은 도저히 혼자서 들 수 없을 것 같은 무게의 앰프와 스피커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궁극의 소리라는 방패를 변명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를 헤매는 것이다. 앰프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케이블을 연결하고 전원을 넣는 순간,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진정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가 부르는 모차르트의 노래가 나만의 독창회가 되는 찰나, 말러의 2번 교향곡이 갑자기 무대 뒤에서 붕붕거리기 시작한다. 결국 프리앰프의 바꿈질은 또다시 실패로 끝난다. 3조의 스피커, 3대의 파워앰프, 2대의 프리앰프, 2대의 시디플레이어, 1대의 턴테이블은 주인의 엷은 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슬픈 모습으로 인터넷의 장터를 다시 떠돌 것이다.
황경신의 『그림 같은 신화』는 신이 만든 인간과 인간이 만든 신의 이야기다.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이 '이 세상의 꿈'이라고 말한 신화를 작가는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쓰면서 그림 속에 깃든 인간의 꿈을 말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남자들까지 사랑했던 태양의 신 아폴론이 신들의 왕 제우스에게 대항하다 인간을 주인으로 섬기는 형벌을 받아 목동이 되었다는 신화는 어쩌면 완전한 존재이지 못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살갑다.
아폴론이 사랑한 다프네가 그의 사랑을 피해 월계수가 되었다는 신화를 오히려 그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월계수가 되었다는 작가의 해석은 여성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모든 사랑과 욕망의 끝은 허무에 닿아 있다"는 작가의 말은 우리 사회가 승리한 자를 위해 월계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신화를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때로는 진실이라는 것도 명백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꿈이 만든 신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종교의 본질이라면 신에게 개입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신화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신화는 종교적 분열을 앓고 있는 현대 사회를 치유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욕망과 집착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이 역시 인간의 본연이라면 아폴론처럼 때로는 사랑하고 싸우면서 또 때로는 용서를 구하면서 사는 것이 일상이리라. 이 순간 어쩌면 값싼 앰프와 낡은 스피커에서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궁극의 소리란 결국 찾거나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는 것에 있을지니.
여행작가 ㈜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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