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 토크박스] 가족의 손을 잡아보자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주로 말과 표정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따뜻한 말과 부드러운 표정을 재물 없이도 남에게 줄 수 있는 '보시'로 여기며 중시한다. 그런데 필자는 수부외과 전문의로서 신체 부위 중 손에 특히 관심이 많고, 손이 얼마나 많은 감정을 전달하는지 실감할 때가 많다. 단순한 전달의 수단을 넘어서 말로, 얼굴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까지도 깊이 있는 감정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어린아이에서부터 여든이 넘은 어르신까지 하루에도 수십 명의 남녀노소 손을 만지게 된다. 병원을 찾은 손이라서 당연히 대부분 뻣뻣하고, 부어 있으며, 딸깍딸깍 인대가 걸리는가 하면, 심한 경우 혹이 만져지기도 한다. 그런 손을 만지다보면 그 손의 고통이 전해져 아픈 마음으로 다가온다.

며칠 전 진료실에 50대의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열 손가락이 모두 아파 구부리기가 힘들 정도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환자의 손을 가만히 만져보니 인대가 부어서 움직임이 많이 둔해졌고, 부드럽게 움직여야 할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딸깍딸깍 하며 걸리는 게 아닌가. 마침 그 환자의 남편이 함께 왔기에 남편의 손을 아내의 손에 대주며 설명했더니, 본인도 그렇게 느껴진다며 아내를 무척 측은해 했다.

또 다른 30대의 젊은 주부는 자신의 손에 만져지는 혹을 컴퓨터 후유증으로 생긴 굳은살 같다고 자가진단하며 진료실로 찾아왔다. 필자가 종양인 것 같다는 진단을 하자 이틀 후 남편과 같이 다시 찾아왔다. 역시 남편의 손을 아내의 손에 대주자, 남편은 아내가 항상 굳은살이라고 주장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며 몹시 당황하는 것을 목격했다..

두 환자의 경우, 부부가 평소에 서로 관심을 갖고 손을 자주 잡아 주었더라면 더 빨리 환부를 알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편이 부인의 손이 아픈 것을 먼저 알아채고 그토록 상태가 악화되도록 방치하는 일은 없었을 테고, 또 손으로 전해진 사랑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손과 손목이 아파서 병원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아주머니들이다. 아픈 손을 가족이 먼저 진단하고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부부간에 서로의 손을 다시 잡아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연애시절만큼 설레지는 않을지라도 서로의 손을 어루만지다 보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아픈 마음을 먼저 치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소중히 기억할 것이다. 연애시절 손을 잡기 전의 설렘과 잡았을 때의 그 감촉을, 또 추울수록 맞잡은 손을 통해 전해오는 따스한 마음을. 희미한 추억이 되어 사라진 기억을 우리 모두 되살려 보는 것은 어떨까.

앞의 두 부부도 젊은 시절 얼마나 마음 설레며 손을 잡았을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손으로 주고 받았을까. 유난히 힘든 2009년도 벌써 마지막 달에 도달했다. 때 이른 한파에 찬바람만 사람과 사람사이를 채워서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지금, 아내와 남편이 다시 서로 손을 잡자. 가족이, 이웃이, 직장 동료가, 우리 모두가 손을 마주 잡고 손과 마음의 고통을 낫게 하자면 너무 거창한 이야기일까?

지금 당장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보자.

이영근

053)550-5000 trueyk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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