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근의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다문화시대의 열린 역사읽기 시리즈로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북방 유목민족의 후예인 백정이 조선 초기 전체 인구의 1/3 내지 1/4를 차지할 정도로, 유목민족은 기록상 고려 때부터 한반도로 이주해 왔다. 가령 백정의 주력인 거란인은 고려와 거란 간의 세 차례 전쟁(993~1018년) 동안 투항하거나 포로로 잡힌 숫자만도 수만명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로 한반도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몽골인의 후예인 달단도 조선 초에 백정이 되는데, 이 달단은 고려와 원나라간의 강화 이후 고려에 왔던 관리와 그 시종, 군인 및 군속 그리고 목동 등으로서 그 상당수가 한반도에 그대로 정착했다. 중국인도 중국 대륙의 정치적 혼란기마다 대거 한반도로 유입되었는데,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에 조선으로 피란 와서 정착한 수십만 명의 유민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이런 현상은 고대부터 있어 왔는데, 그 정도는 훨씬 더 심했다. 당시에는 국경 개념이 그다지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만리장성과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는 등 폭압적인 정치를 했는데, 이러한 폭정을 피해 진나라 사람들이 한반도 남부로 대거 옮겨왔다. 그 이주민 집단이 바로 신라와 가야의 전신이 되는 진한 및 변한 24국을 세웠을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했다.
진나라와 한나라의 교체기에도 중국인이 고조선으로 밀려 들어왔는데, 위만은 이 중국인들을 규합하여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위만조선을 건국했다.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에 거주하고 있던 여진인 역시 한민족의 일원이 되었다. 발해가 멸망한 후, 한반도 북부는 여진인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고려시대에 와서 여진인은 계속해서 자발적으로 또는 복속에 의해 점차 고려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 전쟁을 벌일 때 여진 출신 기병 1만 명을 동원할 정도로 상당수의 여진인이 고려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왜인으로 대변되는 해양세력도 일찍부터 한반도 남부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한국 사회의 순수혈통을 강조해왔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시절의 경험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사실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혼혈아, 이주노동자, 결혼 이주여성들.
2007년 8월 18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는 다민족 사회가 되었으니 인종 차별 행위를 말아달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 주민은 89만명, 여기에 23만명으로 추정되는 불법 체류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외국인 주민은 110만 명을 넘어서 전체 인구의 2%를 초과하고 있다. 이제 한국인은 이러한 유엔의 권고를 떠나서 역사상 극소수에 불과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국가들인 로마, 중국의 당, 몽골, 네덜란드, 대영제국, 미국 등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한결같이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었다. 인종'종교'민족 등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에 제국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은이 이희근은 역사 연구의 성과를 학술의 틀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들과 함께 나누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중역사서 집필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권과 '한국사, 그 끝나지 않는 의문' 등 10여 권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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