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씨름판 정상에 우뚝 서 있던 이만기(46) 인제대 사회체육학과 교수. '씨름판의 황제'라는 수식어는 뒤로하고 이제 그는 교수이자 방송인으로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몸무게가 2자리와 3자리를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씨름을 하지 않으니 이젠 배드민턴, 골프, 산악자전거(MTB) 등의 취미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라면 싫어요. 지금이 좋습니다."
지난달 말 경남 김해 인제대 대학캠퍼스 내 사회체육학과 건물 앞에서 만난 이만기 교수는 동네 형처럼 수더분하고 구수한 경상도 사람 그 자체였다. '깔치(갈치의 센 발음 사투리) 먹을래요? 소고기 먹을래요?' 수업을 마치고 나온 이 교수는 '깔치 먹자'는 기자를 데리고 인근 갈치전문점으로 향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 한토막과 갈치찌개를 점심 삼아 그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
이 교수는 마침 올해 경남도문화상 체육부문 상을 수상해 기분좋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제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곳곳에서 불러주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아 바쁩니다. 앞으로 더 많이 활동해야죠."
◆'정상에 서 있다는 건 외로워요'
이만기 교수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전임강사, 조교수를 거친 인제대 교수지만 아직도 국민들 머리 속에는 천하장사 이만기다. 이 때문에 밖에서 '운동선수가 뭘 알겠냐'는 시선을 보낼 때는 그냥 열받는다. 그는 "인제대에서 교수생활을 한 게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선수생활 때의 이만기만 있는 것 같아 참 답답하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화려했던 그의 과거로 돌아가보자. '49차례나 모래판 정상을 밟았던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정상에 섰을 때는 정말 잠깐"이라며 "우승한 후 모래를 뿌리기도 하고 한없이 포효하기도 하지만 꽃가마에서 내려오면 그 정상을 지키기 위한 부담감이 엄습해온다"고 고백했다. 사실 당시 라이벌 선배였던 최욱진, 이준희, 이봉걸 선수보다는 한창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컸다.
그 대표주자가 씨름판에서 연예계로 전향해 대한민국 지상파 방송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강호동 씨다. 이 교수는 "7년 정도 정상에 서 있다 보니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두렵기도 했다"며 "예전 같으면 강호동씨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이기려 했을 텐데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굴에 온 선수처럼 달려드는 후배들에게 승부욕이 불타오르지 않았던 것이 은퇴하게 된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때마침 1990년 인제대에서 교수직을 제안한 것도 현역에서 은퇴하는 데 큰 계기가 됐다.
'강호동씨가 껄끄럽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강호동은 후배로서 선배들에게 잘 한다.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며 "지난번 그가 진행하는 지상파방송인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솔직하게 다 얘기했으며, 촬영 후 술도 한잔 했다"고 답했다.
◆'정치에 입문하려다 돈 많이 날렸어요'
이 교수는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 뻔도 했다. 그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이 번복되는 바람에 분루를 삼켜야 했던 것. 당초 이 교수가 1차 공천됐으나, 하순봉 사무총장이 지역에서 지지도가 낮다는 이유와 개혁공천이라는 명분으로 김호일 전 의원으로 바꿔버렸다. 다음은 안면몰수였다. 그는 화가 나 한나라당을 한판 뒤짚기하고 싶었으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인지 모릅니다. 당시 정치가 어두웠던 부분이 많았던 탓에 저 역시 그 물에 휩쓸려 쇠고랑을 찼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정치라는 것이 사람을 구정물에 빠뜨리기도 하더라고요."
'이후 17대 때는 또다시 한나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당시 공천파동 후유증도 있었지만 전 사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항상 도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판의 큰 변화를 바라며 열린우리당에 공천신청을 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사실 선거에 쓴 돈도 많았다. 상금, 연봉만도 어마어마했던 이 교수가 그 중 상당부분을 날려버렸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삼세판인데 한번 더 도전할 의사는 없느냐'는 질문에는 "사람 일이라는 게 알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지금은 사실 연예인도 아니고 운동선수도 아니고 교수인데 여러 가지로 지위가 애매할 때가 많다. 앞으로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씨름은 분명히 다시 부활합니다'
그래도 천직이 씨름선수인 이 교수는 "씨름은 지금 쇠퇴기이며 혼란기지만 분명히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역사는 어차피 돌고 도는 법인데 씨름 역시 최고조의 전성기가 있었다면 사그라졌다가 또 중흥기가 돌아온다는 것이 그의 논리. 그는 "이런 중흥기가 가만히 있어서는 찾아오지 않고 씨름협회나 연맹 등에서 대중의 구미에 맞게끔 앞으로의 방향을 잘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구려 무덤벽화에서도 씨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 김홍도의 씨름도를 봐도 씨름이 우리 정서에 딱 맞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운동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씨름의 역사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그는 또 "프로 씨름단이 없어져 버렸지만 선수층 저변은 더 넓어졌으며 지금도 훌륭한 씨름꾼들이 제2의 이만기를 꿈꾸며 씨름의 부흥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라며 "저같이 씨름과 운명처럼 만난 선수가 또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입담도 좋았다. 씨름 해설이나 방송에서 다져진 '말발'이기도 했지만 가식없이 편안하게 핵심을 찔러 말하는 습관이 시청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받는 것 같았다. '종아리를 한번 보여줄 수 있느냐'고 요청하자, "아이고! 밥 사 먹이고, 시달리고, 별거 다 시키네"라고 너스레를 떤 뒤, 학교 건물 내 씨름판으로 내려가 환상의 종아리를 보여줬다. 아직도 양쪽으로 선명하게 갈라진 돌덩어리 같은 그의 종아리는 예술 그 자체였다. 그는 "돈 주고 만져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가족은 나의 힘의 원천'
이 교수는 부인과 어떻게 만나게 됐냐고 묻자, "그런 것도 조사하지 않고 왔느냐"며 핀잔을 줬다. '아 그냥 좀 얘기해 주이소'라고 하자 김건모의 노래라고 뜬끔없이 대답했다. 순간 스쳤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교수는 이어 포항 출신의 부인을 경주에서 5월 5일에 처음 만난 얘기를 해줬다. 그는 "그 당시 전 만인의 연인이었는데 제가 아깝죠"라며 농담을 한 뒤, "사실 아내가 있어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죠"라고 말했다.
이 교수와 두 아들, 삼부자는 함께 MTB도 타고 운동을 하는 등 사이가 좋다. 첫째 이민준(18)은 필리핀에서 치과대를 다니고 있으며, 둘째 동훈(중3)이는 아버지와 함께 붕어빵에 출연해 함께 유명세를 타고 있다. 둘째는 사실 잘생기고 끼가 있어 방송에 함께 출연하면 큰 재미를 안겨준다. 둘째는 방송이 끝나고 나면 '출연료 들어왔습니까'라고 물은 뒤, "엄마 용돈 50만원, 형 10만원, 제가 10만원 가지겠습니다"라고 아버지한테 통보한단다. 그는 "그래도 어머니께 50만원을 챙겨주는 아들이 기특합니다"라고 웃었다.
한편 이 교수는 골프도 수준급으로 최근 개그맨 이경규와 짝을 이뤄 스크린골프 대회 우승도 했으며, 배드민턴에도 조예가 깊어 협회에서 일도 맡고 있으며, MTB는 인제대 앞쪽에 보이는 신어산을 거의 매일 오르내릴 정도의 마니아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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