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젠 멘탈이다] 동통(疼痛)

구약 창세기에 따르면 신은 남자를 타락하게 한 여인에게 출산의 아픔인 '진통'이라는 벌을 내렸다. 신체적인 아픔인 동통은 신이 내린 벌이라는, 그래서 참회의 수단으로 여겨져왔던 이 믿음은 19세기 중엽에 도전을 받았다. 영국의 존 스노가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드 왕자와 베아트리체 공주를 출산할 때 클로로포름이라는 흡입 마취제를 써서 진통을 없애 준 것이다. 영국 의사들은 마취학의 창시와 수인성 전염병의 경로를 파악한 공로를 들어 2003년에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사로 꼽았다.

제2차 대전 때 미군이 이탈리아에 진주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중상자들 가운데 아프지 않아 진통제가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이 7할이나 되었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은 동통을 느끼지 못하고 전투를 계속하는 경우가 흔하다. 전장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권투선수들은 경기 중에 심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어느 중견 의학자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1년에 한두 번씩 혹은 2, 3년에 한 번씩 갑작스레 엄습하는 지독한 복통 때문에 고생했다. 빨리 죽는 게 낫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20여년 후 담석이라는 진단으로 담낭절제술을 받은 후에야 그 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등에 업히는 순간 아픔이 씻은 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힘에 부친 어머니가 내려놓기만 하면 새로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노고가 어떠했을까?

이상의 경우를 두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동통이 지니는 중요한 특성들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동통을 당하는 본인은 무척 괴롭다. 어떤 경우에는 죽고 싶을 정도다. 담석이나 신결석으로 인한 동통, 말기 암 환자들의 동통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동통은 그것을 겪는 사람에게 득이 되기도 한다. 전상(戰傷) 환자들이 손상 부위의 아픔을 일일이 경험한다면 어떻게 전쟁을 치를 수 있겠는가.

척수에는 곳곳에 문이 있어서 두뇌가 동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어 둔다. 안전한 곳에 이르러 빗장이 열리면 비로소 통증 신호가 대뇌에 전달되어 치료를 받게 된다. 이 생각은 데카르트에서 비롯되었다. 또 동통은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다. 예시된 의학자의 경우, 모성애와 기본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모자 관계가 아들의 대뇌에서 엔도르핀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물질은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진통제이다. 동통은 너무 심해도 문제지만 없어서도 안 되는 양면이 있다.

박종한<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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