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주 한일고 입학생 중에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학생이 여럿 있다. 중학교 3년 동안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학교 화장실 청소를 계속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용돈을 털어 불우이웃을 정기적으로 후원한 학생도 있다. 언뜻 듣기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하게 이력을 쌓은 학생들이다. 이들은 모범 분야로 지원해 합격했다.
학교 측은 "공부 하나만 생각하는 것은 결코 교육적이지 않다"며 "기본적인 학력 수준을 갖추고 삶의 목표와 진로에 맞는 활동을 하면서 사회를 위한 봉사에도 소홀하지 않는 학생으로 키우는 것이 학교의 교육목표"라고 했다.
학력 향상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상당수 고교들이 학력 향상에 매달리고 있지만 의외로 수능 성적과 대학입시 결과가 최상위권에 있는 고교들은 학력 외에 다양한 요소들을 길러주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학생들 역시 대학과 사회로 나가기 전에 갖춰야 할 자기애와 인간애, 봉사정신 등을 배우는 가운데 스스로 보람을 찾고 있다.
◆지역사회 봉사활동
현대청운고 1학년생들은 매주 토요일 외출을 한다. 집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 인근의 초·중학생들에게 과외를 해주기 위해서다. 3, 4시간 정도 부족한 공부를 채워주고 나면 함께 땀을 흘리는 운동 시간. 단순히 공부를 가르쳐주는 고등학생이 아니라 형과 누나로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 활기를 띠고 있는 멘토링을 이들은 진작부터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청운고 조진현 입학관리부장은 "학교 특성화 분야의 하나인 인간화 교육을 위해 지역공동체를 위한 봉사 프로그램 참여를 중시하고 있다"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남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과외 봉사를 하고 있는데 참여 학생과 대상 학생 모두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공주 한일고 학생들 역시 주말이면 인근 농촌 마을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간다. 지역의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일을 돕고, 지역 중학생들을 1대1로 가르치는 멘토링도 한다. 중학생 숫자에 비해 한일고 학생이 많다 보니 과목별 멘토가 각기 다를 정도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 한일고 학생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착한 학생들"이라는 칭찬이 파다하다.
김종모 교장은 "내가 사는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국가관이 확고한 가운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진정한 21세기형 글로컬 인재"라며 "1학년 때부터 지역사회 봉사가 몸에 익다 보니 학생들끼리 더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해 실천할 정도"라고 했다.
서울대는 내년부터 재학생 500명을 장학생 멘토로 선발, 전국의 저소득층 중·고교생 2천여명을 대상으로 원격 멘토링을 시행한다고 6일 밝혔다. 대학 인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던 지역적 한계를 넘어 대학생 봉사활동의 새로운 형태가 될 전망이다. 아직도 시간 때우기식 봉사활동에 학생들을 방치하거나 불우·소외시설 중심의 일회성 봉사에 그치고 있는 대다수 학교들이 음미해볼 만한 내용이다.
◆동아리를 통한 감성·창의성 기르기
새 학기가 시작되면 일반계 고교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 있다.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지도교사를 모시기 위해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다. 방송부, 신문편집부 등 일부는 전통과 교내 역할이 있어 문제가 없지만 뭔가 특이한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지도교사 구하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고교 교사는 "현재 고교 여건상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동아리를 일일이 지도하기는 어렵다"며 "지도교사가 없어 학교 승인을 받지 못하고 활동할 공간도 구하지 못해 원하는 활동을 못 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자사고나 자율고 등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동아리 신청이 심의를 통과하기만 하면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지도교사를 배치해 가급적 많은 동아리들을 양성하려 애쓰는 분위기였다. 전주 상산고의 경우 신문, 방송, 연극, 영화,봉사활동, 인터넷, 컴퓨터, 축구, 농구, 사물놀이 등 일반적인 동아리 외에 마술, 만화, 국사연구, 불교문화탐사, 산맥탐사, 오케스트라 등 독특한 내용의 동아리들도 학교의 승인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손성호 입학관리부장은 "매일 점심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해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며 "교사뿐만 아니라 졸업한 선배들이 지속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도와주기 때문에 동아리마다 수준이 높다"고 말했다.
공주 한일고의 경우 학교 승인을 받은 동아리만 현재 63개다. 승인은 받지 못했지만 학생들끼리 시간과 활동공간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탐구활동을 하는 동아리도 40개 정도는 될 것이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최용희 입학관리실장은 "3~5개 동아리에 참여하는 학생도 적잖다"며 "대원외고나 민족사관고 등의 비슷한 동아리들과 교류하는 등 동아리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적극적"이라고 했다.
현재 논의가 한창인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의 세부 영역은 진로와 봉사, 동아리 등 3개로 구분된다. 대구의 일반계 고교들이 동아리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우수 학교들의 사례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친구와 선후배는 나의 힘
학력이 뛰어난 고교의 내부 경쟁은 상상을 넘을 정도로 뜨겁다. 대학 진학 때 고교 내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탓도 있지만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학생들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쟁은 시험에서 불가피한 과정일 뿐 학생들 사이의 우애는 보통의 고교들보다 한층 끈끈하다. 서로가 서로의 실력과 잠재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 덕이다. 학생들끼리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주는 상호 과외제도나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탐구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여서 머리를 맞대는 동아리 활동이 이를 더 굳건하게 만든다.
학교 측의 배려도 적잖게 작용한다. 영양여고의 경우 중간·기말고사 마지막 날 야간 자율학습 때는 모여서 파티를 한다. 첫 시간은 친구에게 편지 쓰기. 고마운 일이나 칭찬할 일, 사과할 일 등을 담는다. 영화 한 편을 감상한 뒤 각자 쓴 편지를 전하고 감명 깊은 편지는 읽도록 한다. 마지막 시간에는 춤 파티를 열어 우정을 더욱 다지도록 해 준다. 박순복 교장은 "최근 8년간 비행으로 징계를 받은 학생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데는 친구와 공동체 생활을 중시하는 교육이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대구과학고는 선후배 관계가 돈독하기로 유명하다. 졸업식 때 후배들이 줄지어 서서 졸업생 한명 한명과 손을 잡는 악수식 전통은 이를 잘 보여준다. 졸업식이 끝난 뒤 점심을 먹고 나서 시작하는데 예전에는 3, 4시간 걸리던 것이 지난해는 오후 8시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그만큼 선후배 사이에 나눌 이야기가 많고 정이 들었다는 의미다.
구교석 교무기획부장은 "동아리나 R&E(Research and Education) 활동을 할 때 졸업한 선배들 가운데 실력파를 찾아 도움을 받는 일이 흔할 정도로 선후배 사이의 정이 두텁다"며 "스웨덴에 유학 간 선배와 새벽부터 밤중까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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