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가? 우군인가?'
대포(大砲)라는 신무기가 전장에 처음 등장한 것은 15세기 초였다. 몇몇 전투에서 유용성이 입증됐지만 다루기 어려워 골치를 썩이는 애물단지였다. 부정확해 우군에게 포탄이 떨어지기 일쑤였고, 화약의 양이 많으면 폭발 사고로 적이 아니라 포병대원들을 날려버렸다. 대포가 진일보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교회의 종(鐘) 때문이었다. 교회 첨탑에서 은은히 울려퍼지는 청동제 종을 포신으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프랑스에서 채택되면서 쉽게 폭발하지 않는 튼튼한 대포가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부정확성 문제는 여전히 골칫거리였다. 1536년 베네치아 대학의 수학과 주임교수인 니콜로 폰타나는 베네치아 정부로부터 대포의 개량에 나서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는 베네치아 포병의 훈련 장면을 지켜보다 포탄이 직선이 아니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물체는 직선운동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에 대포의 사수가 거리 계산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탄도 거리를 계산하는 '탄도수학'을 만들어내면서 대포의 위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이때부터 포병대에는 수학적 능력이 있는, 머리 좋은 군인이 배치된다. 포병 장교 출신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전략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세기 들어 1차대전 때는 105㎜(포구 지름) 곡사포, 2차대전 때는 155㎜ 곡사포가 포병의 주요 무기였다. 한국군은 1980년대까지 미군이 남기고 간 105㎜를 많이 썼지만 요즘은 국산 155㎜를 주력으로 쓰고 있다. 155㎜ 포는 미국이 1941년 차량 견인식으로 설계한 것을 근간으로 한다. 그전만 해도 말이 대포를 끌었지만 차량이 견인하기 시작하면서 '포병은 3보 이상 차량 탑승'이라는 말이 생겼다.
더 크고 위력 있는 대포가 많은데도 세계적으로 155㎜를 애용하는 것은 탄약의 운반과 장전, 이동에 강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2년 KH-179 155㎜ 곡사포를, 1999년 155㎜를 차량에 탑재한 k-9 자주포 개발에 성공했다. 며칠 전 155㎜ 포 사격실험을 하던 국방과학연구소 직원 6명이 폭발 사고로 죽거나 다쳤다. 무기 실험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이분들의 희생이 한국 무기 기술 발전에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박병선 논설위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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