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기억 하나.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몇 년 앞두고 스포츠 시설물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던 시절.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대구시민운동장 담을 넘어 봄 정취를 사진에 담고자 했던 필자는 경비에 발각되어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 보안과에 넘겨졌다. 어린 고교생에게 고문은 없었지만, 하루꼬박 걸린 담당 형사의 모욕적인 수사 방식은 지금도 치욕으로 남아 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굳이 헌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도 이 나라가 조금은 자랑스러운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러한 원칙이 최소한은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한국 정치를 항상 비아냥거리고 난도질하지만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민주주의 지수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보다 경제적 양극화와 불균형이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대 언론사와 중소 언론사, 서울지역 대학과 지방대학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는 그래도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구호라도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구호조차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선진국 운운하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하다.
기득권 세력과 거대보수 언론사들은 세종시로 일부 정부 부처가 옮겨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수도가 분할된다느니, 효율성이 떨어진다느니 하면서 떠들고 있지만 실상은 '서울공화국'이 유지되어야 배를 더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지구상 어느 국가가 수도에 이렇게 국부(國富)가 집중되어 있는지. 미국, 일본, 중국,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도와 지방간의 극심한 불균형에 대해 어떤 해답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넘어 한 국가의 모든 명문 대학이 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인가. 지방 사람들이 기대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방 경제는 오래전부터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최근 들어 지역 방송사와 언론사 중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광고가 중요한 수입원이 되는 곳도 있다. 광고할 기업이 지방에는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울의 거대보수 언론사들은 용비어천가만 부르고 있다. '한국 경제, 회복 속도가 빠르다', '더블 딥,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다', '올해 플러스 성장 가능'등.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어떠한 사실요소를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2009년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호의적으로 추정해서도 0.25%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중국은 9%대이다. 주가, 국민소득, 외환보유고는 참여정부 시절 보다도 못하다. 반면에 외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부패지수와 개인의 자유도는 매년 추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 평균 경제성장률 4.4% 기록한 참여정부를 '경제파탄 정부',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집권당과 거대보수 언론은 지금의 정부를 어떻게 규정해야 옳은가. 국어사전에서는 '적절한 용어'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참여정부가 고성장 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도 서민들의 삶은 팍팍했고 힘들었다. 그래도 참여정부는 실천은 못했지만,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었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이 있었다. 현 정부는 조금은 솔직해져야 한다. '서울공화국'의 기득권을 지켜주지 않으면, 정권 유지가 어렵다고. 거대보수 언론사의 눈 밖에 나면 정권 재창출이 안 된다고. 비록 지금은 여러 가지 역학구도 상, 지방민이 단결하기 힘들지만 언제까지 침묵할지는 알 수 없다. 국가마저 자본과 기득권의 논리에 지배된다면, 국민들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방민은 영원한 3류 국민인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전용배 동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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