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자 화두를 남긴 중국 조주 스님의 끽다거(喫茶去)는 부처님의 법이 멀리 있지 않다는 말로 해석된다. 한 말씀 듣겠다고 찾아오는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차나 한잔 마시라'고 대신한 그의 말을 후학들은 '진리는 일상생활 안에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도니 법이니 하는 것은 깊은 산속이나 높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밥 먹고 옷 입고 일하고 잠자는, 매일매일 마주치는 세상살이에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의 질문은 막연하며 범위가 넓고도 크다. '사람은 왜 죽어' 식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는 쉽지 않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아이들의 호기심은 자라면서 조금씩 줄어든다. 뭉뚱그려 묻던 황당한 질문도 구체적으로 변한다. 학자들은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고의 분화가 이뤄지는 때문이라고 한다. 지적 수준의 성장이 생각도 쪼개고 나눠서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담배가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경고 문구가 오히려 금연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이색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외신은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 문구가 죽음과 관련이 적을수록 금연 효과는 더 크다는 외국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대신 '흡연은 당신을 매력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거나 '흡연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문구가 금연에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경고문으로 금연을 하게 하려면 먼저 흡연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담배를 더 피우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흡연을 멋있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매력이라는 현실적인 말이 당장의 행동에 더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각종 구호가 넘쳐난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따져보면 알맹이가 없는 공허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의사회 구현, 신한국 창조, 제2의 건국이나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등으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요란한 말이 넘쳐났지만 국민의 눈에 비친 정치 현장은 안쓰러울 만치 흔들렸고 공권력은 무력화됐다. 구호는 정치 현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치단체마다 말 잔치 경쟁이 벌어지고 몇 명만 모여도 거창한 구호를 내건다. 그러나 말이 거창할수록 알맹이는 적고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다. 넘쳐나는 구호는 우리 사회가 아직 어린아이의 수준이라는 증거는 아닐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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