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부](17)진주 하씨 창렬서원 강순희 여사

"창렬서원을 고택 체험장 만들었지요"

겨울이 코앞에 다가온 11월 어느 날, 안동시 서후면 교리로 운전대를 잡는다. 이제는 추수도 다 끝나 한산한 논길을 달리다 보면 좌측으로 교리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산 밑으로 창렬서원이 눈에 들어온다. 창렬서원은 사육신 중 한사람인 단계 하위지(1412~1456)선생의 학문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으며, 서원 뒤편 창렬사에는 단계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종가니 종손이니 제사가 뭔지도 몰랐죠

진주 강씨 교리공파인 강순희(57) 종부는 한국전쟁이 한창일 적 부산 광안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경기도 파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기독교 집안에서 큰 모자람 없이 자랐고, 중고등학교를 포함해 8년여를 농구선수로 살다 보니 제사와 종갓집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당시 육군본부에 근무를 하고 있던 종손(하용락, 단계 하위지 충열공파 18세손)을 지인의 소개를 통해 만나 1년 6개월여를 교제하면서 종손이라는 말을 그냥 맏아들쯤으로만 생각했었다고 한다. 25세에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안동시 서후면 교리로 시집을 오게 된다.

서울에서 20여년을 살다가 안동으로 시집 왔을 때 처음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처음 시집 온 그곳에서 현재까지 살아오고 있다. 서원은 1980년대에 이곳으로 이건하여 왔다고 한다.) 오로지 보이는 건 산과 논과 들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는 곳에서 종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종부의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첫애를 낳고 몸조리한다고 누워 있는데 시아버님이 도포를 입고 문중 지손들 10여명이 참여하는 제사풍경을 보면서 '머 이런 곳이 있나'하는 생경함을 먼저 느낀 도시에서 온 종부. 6명이나 되는 시누이들도 다 출가한 뒤였고, 시어머니는 종손이 어렸을 때 돌아가신터라 그런 분위기를 익힐 만한 환경이 못되었다.

◆ 스스로 돌아봐도 대견스럽다

생판 다른 환경에서 살다 5대봉사를 하는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1년에 기제사 16번, 정월초 제사, 9월 9일 중이제사, 6월 27일 단계제사, 9월 2일 향사 등의 약 20번의 제사를 모시게 된다. 평균 한달에 한번 이상의 제사를 계속 모시는 셈이다.

항상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생경한 집안 환경, 그 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종부. 게다가 운동선수로 뛸만큼 활동적이었던 성격 등을 감안해보면 쉽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종부는 서울 친정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친정어머니의 만류로 인해 돌아온 종부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종부에게 자식들의 교육은 중대한 관심이었다. 주변에 과외를 할 사람도 학원도 없던 이곳에서 아이들 교육에 집중했다. 대구에서 신학대학원을 다니면서 전도사로 있는 큰딸 윤정씨, 인테리어를 하는 아들 운식씨,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막내딸 윤주씨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지금까지 견디며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 자식들이 장성한 지금에 와서는 종부 스스로가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온 것이 기특하다.

◆고택체험 인터넷카페 개설

안동에 고택체험이 막 시작되던 3년 전쯤 창열서원을 고택체험장으로 신청하고 시에서 화장실과 샤워실을 지원받아 민박을 받게 되면서부터 종부의 삶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택숙박을 신청은 하였으나 집에 손님이 오가는 것이 싫어 민박을 잘 받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고택에 묵어가는 손님들을 어떻게 더 잘 대접할까를 고심하고 있다.

그리고 발효식품을 배우면서부터 자녀들의 교육과 내조에만 몰두했던 삶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발효식품을 배워서 실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레시피를 토대로 다른 방법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기존의 방식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더 맛깔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날도 냉이식초를 담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현재 냉장고에는 16가지의 장아찌가 저장돼 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없어 시집살이를 하지 않아 편했던 대신 종가의 음식은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쉬움을 자신의 노력으로 다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hg320, 12월 중 오픈)를 개설하여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도 가지고, 발효식품에 대하여 알리고 또 배우고 싶다고 의욕을 보인다. 그 바쁜 걸음이 오늘을 사는 또 하나의 종부의 모습으로 기억되어 진다.

(사)경북미래문화재단 강병두 plmnb12@hanmail.net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