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바도르'(1986년'올리버 스톤 감독)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영화는 미국 사진기자의 눈을 통해 엘살바도르 내전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주인공인 사진기자 리처드 보일은 특종을 잡기 위해 엘살바도르로 가서 극도로 부패한 엘살바도르의 현실을 체험하고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카메라에 담는다. 리처드는 학살당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버려진 곳이 있다는 정보를 우연히 입수한다. 마치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시키는 그곳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신들이 있었다. 군부는 학살한 민중을 이곳에 버린 것이다. 시체 썩는 악취와 벌레, 피 등으로 인해 리처드는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다. 그때 같은 종군기자 친구가 말한다.
"여보게, 진실을 알려면 보다 가까이 가게."
썩어가는 시체 더미로 다가간 그들은 마침내 서방 세계에 엘살바도르 독재정권의 만행을 알리게 되고, 이 사진은 남미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된다.
나는 의과대학 시절에 허리가 자주 아팠다. 그때 어머니께서 나를 경북대병원 건너편에 시각장애인이 하는 침술방에 데려갔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분이 아픈 곳을 척척 잡아내는 게 참 신기했다. 그런데 지금 깨달은 건 환자가 말하기 전에 만져보면 생각보다 상당히 많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레지던트 때의 일이다. 뇌수술 후 계속 식물상태에 있는 환자들을 볼 때면 솔직히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식물상태로 그냥 계속 있다보니 보호자도 잘 안 오고, 주치의인 나도 그냥 근성으로 매일 똑같은 처방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회진을 하는데 담당과장님이 나에게 식물 상태로 오래 투병 중인 환자에 대해 갑자기 몇가지 물었다. 얼떨결에 대답을 드렸는데 늘 옆에서 환자를 지키던 딸이 나를 보고 대뜸 "선생님이 어떻게 우리 아빠를 그렇게 잘 아세요? 언제 우리 아빠를 만져는 봤어요? 가까이 와서 보신 적 있어요?" 라고 물었다.
얼마나 황당하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 기억이 의사생활을 하면서 건성으로 환자를 보려고 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환자와 멀리 물러서 진료하려는 나를 발견할 때면 화살처럼 내 가슴에 꽂힌다. 다시 나로 하여금 환자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고 환자를 만지면서 진찰하게 한다.
얼마전 친구가 운영하는 한 병원에 갔었다. 거의 모든 진료과 의사가 동문 후배들이라 이방 저방을 기웃거렸는데 하나같이 환자를 만져보지는 않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환자 만지는 걸 그렇게 어려워하고, 엑스레이와 고가의 장비에만 의존해서 진료를 했는지…. 엑스레이 사진만 걸어놓고 진료하는 것이 과연 환자의 질환을 제대로 진단하고 아픈 곳을 낫게 할 수 있을까?
사회가 의사들을 오해하고, 의사들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투덜대기 전에 먼저 의사 스스로가 환자에게서 멀어지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방사선 검사와 혈액검사,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환자를 만지고 냄새맡고 아픈 곳을 두드려 봐야 할것이다.
"정확한 진단을 하려면 보다 가까이 가게."
권 오 현 053)592-1491 nsdr17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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