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심포리'

그저께 대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1회 현진건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 상은 대구소설가협회가 대구 출신 소설가 빙허 현진건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선생 출생 109년 만에, 사후 66년 만에야 고향인 대구에서 선생의 이름을 단 문학상이 제정됐다는 데서 너무 늦었다는 안타까움과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이 교차했다. 수년 전 문학 담당 기자로 현진건 문학상 제정을 촉구하는 기사를 쓴 사람으로서 느끼는 소회도 남달랐다.

이 상의 첫 수상작은 소설가 이수남 씨의 단편 소설 '심포리'이다. 이 작품은 여로(旅路)형 소설이자 자아 성찰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스위스 여행 중 필라투스로 가던 톱니바퀴 기차의 우연한 사고로 애써 잊고 싶었던 40년 전 심포리에서의 아프고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20대 초반 학창 시절에 잠깐 짐꾼으로 일했던 심포리에서 짧고도 슬픈 사랑을 나눴던 철암댁을 찾아 심포리로 간다. 그곳에서 철암댁의 비극적 삶과 근황을 알게 된 주인공은 깊은 갈등과 고뇌에 빠진다.

1964년 제2회 매일문학상 당선으로 데뷔한 이 씨는 대구경북과 이 지역 인물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열차를 타고 포항 죽도시장을 찾아가는 길에 역마다 얽혀 있는 추억을 되살려내는 '대구선' 등이 대표적이다. '심포리' 역시 이 마을은 강원도 삼척에 있지만 소설 주인공은 대구에 살고 있고 동대구역에서 경북 곳곳을 거쳐 심포리로 간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대구경북을 소재로 한 시나 소설 등 문학 작품이 적지 않다. 자신이 딛고 선 땅을 무대로 해 창작 활동을 하는 지역 작가들이 숱하게 많은 것이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서울의 이름 난 작가들 작품에만 열을 올릴 뿐 지역 작가들의 작품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실정이다.

동료 문인들은 이 씨의 수상을 축하하면서 "젊었을 무렵 서울로 갔다면 더 훌륭한 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 덕담(德談)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좁게는 문학, 넓게는 문화마저 수도권에 종속된 것 같아 입맛이 씁쓰레했다. 대구경북 사람들이 이 지역을 소재로 한 문학'예술 작품을 쳐다보지도 않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이 알아줄 리는 만무할 것이다. 정치'경제 분야의 지방 분권(分權) 못지 않게 문화에서의 분권도 시급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 시상식이었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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