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업주부서 여성신문 제작자로 '화려한 변신'

문숙경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다채로운 인생이었다. 작지만 야무져보이는 외모, 차분한 말씨와 단정한 제스처. 여성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돌길을 피해가지 않았던 선구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문숙경(54)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그는 요즘 딸에게 "평생 무슨 일을 하면서 놀지?"라는 화두를 던졌다.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일을 하면서 논다? 문 원장은 "대학 졸업 후 딸이 직장을 찾고 있는데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재밌고 보람된 삶을 살았으면 한다"며 "'놀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게 정말 멋진 일 같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문 원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국민윤리를 가르쳤다.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지사에서 봉사관장(어린이집 원장)을 거쳐 경북지사 사회봉사과장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일과 가정을 양립했다. 하지만 지쳐갔다. 홀연 모든 일을 접고 전업주부로 돌아섰다. "말이 전업주부지 아직 김치도 한번 담가보지 않았어요. 한 10년 정도 집안에 있었는데 자꾸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

2000년 여성부가 출범하고 우연한 기회에 여성신문 대구경북지사장을 제의받았다. 주위에서는 "얌전한 사람이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저리 쉽게 쓰다니?" 하며 뜨아해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앞으로 이 일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문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당시는 '아줌마'라는 키워드가 사회에서 급부상하는 시기였고 여성 인권은 걸음마 단계였다.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삶이 변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인 것 같아요."

'여성긴급전화 1366'의 전국망도 그가 조직했다. 피해자 편에 서서 경찰과 삿대질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러던 중 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과정도 수료했다. 그리고 지난해 진흥원장 공모에 나섰다. 문 원장은 "제가 만약 엄마와 주부로서만 살았더라면 아들, 딸이 지금처럼 독립적이고 훌륭하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찾고 꼭 소중한 일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진흥원에 온 뒤 개혁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양성평등에 대한 특별 교육도 올해 878명의 고위공무원·언론·의료·정치계 인사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정책입안자에게 이런 교육이 가장 필요하단다. 한두명이 고작이었던 아동성폭력 예방 강사도 올해 400명이나 배출했다.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인식이 높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남녀가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사회가 안정될 때까지 열심히 하렵니다."

문 원장은 1955년 김천 출생으로 대구 중앙초, 경북대 사대부중·고, 계명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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