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 교육청 '학생저자 10만양성'프로젝트

책쓰기 운동은 학생들이 단순히 책을 읽는 독자에서 벗어나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는 생산자 겸 소비자가 되도록 유도하는 활동이다. 9일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열린 책 축제에서 학생저자들이 자신이 펴낸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책쓰기 운동은 학생들이 단순히 책을 읽는 독자에서 벗어나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는 생산자 겸 소비자가 되도록 유도하는 활동이다. 9일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열린 책 축제에서 학생저자들이 자신이 펴낸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글쓰기가 어렵다고요? 우린 책도 냈는걸요!"

청구중학교 3학년 박정기(15)군은 교내 책쓰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미래의 꿈을 찾았다. 책을 쓰면서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열정도 배웠다. 친구들과 함께 펴낸 책 '푸른 꿈나무들의 이야기'는 스스로 꿈을 찾아 나선 사춘기 소년들의 보고서다. "제 꿈은 반도체를 개발하는 연구원이에요.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식과 앞으로 제가 쏟아야 할 노력들을 글로 썼어요. 머릿속 생각은 변할 수 있고 구속력도 없어 중간에 포기할 수 있잖아요. 이 책에 담긴 글은 꼭 이루고 말겠다는 저와의 약속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인재상이 지식백과사전식 인재에서 창의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로 바뀌고 있다. 수학공식처럼 정형화된 지식만 가득 찬 인재보다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인재를 선호한다. 학교 교육도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 등장은 교과서, 참고서에 매몰된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고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책 한 권 읽을 필요 없었던 학생들을 책과 가까워지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는 5지선다형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점수로 서열화해 소위 명문대학교 진학이라는 소모적인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교육계 내에서조차 학교 교육이 수능시험 고득점을 위한 문제 풀이식 수업과 평가에 머물고 있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시교육청의 '학생저자 10만 양성을 위한 책쓰기 교육' 프로젝트는 주입식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의 본질에 다가서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10만 학생저자 스타트

하얀 종이에 머릿속 생각을 채워 넣는 작업은 만만치 않다. 글쓰기는 읽고 듣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뭘 쓸지 소재를 찾고, 정보를 모은 뒤 뭘 담을지 선택해야 한다. 능동적인 사고가 필요한 활동이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의사소통 도구라는 점에서는 말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고치고 다듬어 문자로 남기는 과정은 내뱉으면 끝나는 말과 달리 복잡하다. 그래서 글쓰기는 어렵다고 여긴다. 교육현장에서조차 글쓰기는 문학적 감수성이나 글재주가 뛰어난 몇몇 학생들을 선별하는 데 그쳐왔다. 그 결과 획일적이고 단편적 지식만 가득 찬 점수기계들을 양산했다. "세상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판단과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 교육은 획일적 생각만 가진 말 잘하는 학생만 길러왔다"는 비판은 바로 우리 눈앞의 현실이다.

책쓰기는 생각하는 인재 육성을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스타트는 대구에서 끊었다. 대구시교육청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책쓰기 운동'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 흥미, 진로 등과 관계있는 주제를 선정해 A4 30쪽 정도의 보고서를 책 형태로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이다. 동아리 활동을 주축으로 책쓰기를 통해 학생 개개인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워 '신나는 공부' '하고 싶은 공부'에 접근시킨다는 게 목적이다. 1인1책쓰기를 통해 학생저자 10만명을 양성한다는 거대한 포부도 담겨 있다. 학생들의 참여도가 좋아 현재까지 3천981명이 책을 냈다.

시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 한원경 장학관은 "그동안의 독서교육은 독자교육에만 치우쳐 있었던 반면 책쓰기는 저자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유로운 상상, 깊이 있는 공부와 연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결론 등을 내릴 수 있어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가 크다"고 했다.

◆책쓰기는 능동적 독서교육

9일과 10일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열린 책 축제는 시교육청이 지난해부터 펼친 1인1책쓰기 운동을 평가하는 자리이자 대규모 학생작가 탄생을 축하하는 장이었다. 전시장에 펼쳐진 학생저자의 작품 600권은 그 수만큼 모양도 가지가지였다. 들춰본 책장 안에는 우주의 신비를 탐구한 중학생의 보고서, 청소년의 로망인 대중문화에 보내는 여고생의 장문 편지, 가수를 꿈꾸는 초등학생의 소망 등이 담겨 있었다. 영화 맘마미아를 통해 미혼모 문제와 올바른 성윤리를 전달하려는 고등학생의 재치 넘치는 글도 눈에 띄었다. 정식으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개성 강한 갖가지 책에는 주제선정부터 거듭된 퇴고의 과정까지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키기 위해 학생들이 겪었던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최선(덕원고 1년)양은 "100장도 안 되는 책을 쓰느라 여러 날 밤을 새웠고 학원을 다녀온 늦은 밤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졸기도 했다"고 말했다.

책쓰기 운동 이후 많은 학생들이 책과 가까워졌다고 한다. 논술 준비나 독후감을 쓰기 위해 억지로 하는 책읽기가 아니라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선택부터 자발적인 책읽기였다. 모자라는 부분은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모으고 정보를 선별해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얻는 것은 한 권의 책 분량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강민재(청구중 3년)군은 "공부만 잘하면 훌륭한 외교관이 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리더십, 불의에 무릎 꿇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책쓰기를 통해 깨달았다"고 했다.

김민규(성지초 6년)군은 "운동 재능을 타고난 한 이종격투기 선수가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승리를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소설로 엮었다"며 "아나운서가 되는 게 꿈인데 어떤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주인공처럼 이겨내 반드시 꿈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교사들 역시 책쓰기가 머릿속에 머물러 있던 학생들의 상상력을 밖으로 꺼내고, 교사의 눈만 바라보던 아이들의 자발적 욕구를 자극했다고 평가했다. 대입 논술고사가 획일적이고 난해한데다 고작해야 원고지 15장을 넘지 않는 형식적인 답안 작성 능력을 중시한다면, 책쓰기는 학생 스스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주제를 직접 설정하고 능동적이며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까지 요구한다는 것.

성지초교 임휘성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서전 쓰기를 시켰는데 스스로 자신의 꿈을 찾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살펴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북동중 최옥화 교사는 "단계별 책쓰기 프로그램은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통해 학생 자신의 흥미, 적성, 꿈을 찾는 기회를 줬으며 사고력 신장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덕원고 현석휴 교사는 "자유로운 상상, 깊이 있는 공부와 연구,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찰하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시교육청은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운동을 시작으로 아침독서 10분 운동, 삶쓰기 100자 운동, 통합교과 논술교육 등으로 독서와 글쓰기 교육을 진행시켜왔다. 4천명의 교사 사이버 연수, 100개의 학교 동아리 활동, 연구학교 지정을 통해 기반을 다진 책쓰기 교육은 내년에는 모든 교사 연수를 통해 전 학교로 확대 실시할 방침이다. 한원경 장학관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강화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은 물론 잠재력과 사고력, 적성과 표현력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에도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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