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민기자]사랑으로 한 땀, 희망으로 다림질

대구 남구청 희망근로 교복제작소 750벌 프로젝트

김월선씨(왼쪽)와 이미숙씨가 교복 만들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김월선씨(왼쪽)와 이미숙씨가 교복 만들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대구시 남구 대명 10동에 자리한 '희망교복제작소'. 26㎡(8평) 남짓한 공간 안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와 어지럽게 널린 천조각들, 다리미에서 솟는 하얀 수증기가 자욱한 가운데 7명의 아주머니들이 바쁜 손을 놀리고 있었다.

올 9월 남구청에서 실시한 희망근로사업의 일환인 '희망교복 만들기 100일' 프로젝트 현장이다. 11월 말까지 750벌의 교복을 제작할 예정이었으나 워낙 꼼꼼하게 제작하고 있는 관계로 일정은 12월까지 연장됐다.

작업 공간 한쪽엔 이미 완성된 옷들이 깔끔하게 걸려 있다. 한눈에 봐도 여느 기성교복 못지않은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행여 이 교복을 무상으로 받을 소년소녀가장,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학생들이 놀림을 받거나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다.

"5년 만에 다시 재봉틀을 잡을 때 묘한 설렘이 있었죠. 열심히 일해도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이 힘들어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는데 이렇게 옛 추억을 되새기며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재봉경력 35년의 송민자(65)씨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교복제작소는 원래 송씨가 식당을 운영하던 곳으로 올 초 불황으로 폐업을 한 곳이다. 처음엔 단순히 밀린 점포세를 갚기 위해 희망근로를 지원했던 송씨의 딱한 사정에 교복제작기간 동안 점포세는 남구청에서 대납을 하고 있다.

운영하던 교복사를 휴업하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봉제경력 22년의 석정식(53)씨는 "단지 대기업 브랜드 교복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성 들여 만든 교복들을 팔지 못해 폐기처분할 때는 너무 비참했다"고 운을 뗀 뒤 "제가 만든 교복을 입은 해맑은 학생들의 인사를 받을 때는 그토록 싫던 교복 만드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 긴장을 해 몇벌의 교복을 망치기도 했다는 김월선(62)씨는 "나이가 많아 번번이 취업을 못해 안타까웠는데 이곳에서 이렇게 보람된 일을 하고 있으니 요즘은 살맛이 난다"고 밝혔다.

이미옥(55)씨는 함께 일하는 6명의 동료들이 마치 친자매처럼 느껴진다고 했고 이옥자(58)씨는 앞으로 마땅히 할 일이 없는데 이들과 힘을 합쳐 교복사를 차리고 싶다고도 했다. 가장 나이가 어리면서 패턴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이미옥(43·앞의 이미옥씨와 동명이인)씨는 "이번에 교복 제작에 참여하면서 충분한 실습을 거쳤기 때문에 내년에 봉제기능사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희망이 새로운 희망바이러스를 퍼뜨려가고 있는 교복제작소의 송민자씨는 "우리도 저마다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지만 이곳의 교복을 입을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면 분명히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나중에 커서 지금 받은 사랑과 희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었으면 한다"는 작은 소망을 밝혔다.

한편 남구청 관계자도 "기대 이상으로 이곳의 교복이 잘 만들어져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매서운 칼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이곳 희망교복제작소에서 만든 750벌의 교복들은 미래의 희망을 안고 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 조보근시민기자 gyokf@hanmail.net

도움: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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