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1년 중 가장 밤이 긴 동짓달 그 기나긴 밤의 긴 허리를 잘라 내어/ 봄바람처럼 따스한 이불 아래 잘 서리어 넣어 두었다가/ 정든 님께서 오신 날 밤에 그것을 굽이굽이 펴서 짧은 봄밤을 길게 지내 보리라"는 뜻이다.
이 작품에는 황진이와 당대 명창 이사종(李士宗)의 사랑이 배어있다. 진이가 명창 이사종을 만난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을 때였다. 서화담이 생전에 거처하던 서사정 초당을 찾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박연폭포와 송악산을 구경하고 오던 이사종을 만난 것이다. 황진이와 이사종의 사랑을 보여주는 글이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보이는데, 황진이가 이사종과 더불어 그의 집에서 3년, 자기 집에서 3년 도합 6년간의 애정 생활을 마치고 깨끗이 이별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그들은 현대에도 하기 드문 계약결혼을 한 것이다. 그런 사랑을 나눈 이사종과 헤어진 황진이는 떠난 이사종이 그리워 찬바람 부는 긴긴 동짓달 밤에 그의 품을 그리는 마음을 이렇게 읊어 편지 대신 보냈다고 한다. 이런 사랑의 마음을 편지로 받은 사람의 심정은 또 어떻겠는가.
이 작품은 4천편에 달하는 고시조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또한 이 작품으로 황진이를 우리 시문학사상에 최고의 시인이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그 까닭은 이 작품은 어처구니없는 소원이 작자의 놀라운 표현을 거쳐 독자가 보기에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또한 표현의 놀라움은 추상적 시간이 구체적이며 너무나도 생생한 이미지를 거쳐서 나타나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허리를 베어내어', '구뷔구뷔 펴리라' 처럼 생생한 이미지를 거쳐서 행동적으로 혹은 능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황진이가 이사종과의 사랑을 계기로 남게 된 이 작품은 우리 국문학사에서 참으로 소중한 유산이 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오늘의 현대시도 이런 경지에 오른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읽고 또 읽어 외워버려야 할 시조다.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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