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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문현주(대구 북구 태전동)
다음 주 글감은 '송년회'입니다.
♥ 통금없는 성탄 이브 '소주 축복'
12월도 벌써 끝자락, 매년 이맘때쯤이면 구세군의 '땡그랑땡그랑' 울리는 종소리에 자선냄비에는 온정이 넘쳐나고, 시내 레코드 가게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경쾌한 리듬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뿐만 아니라 서점이나 문방구의 진열장에 가지런하게 놓인 크리스마스 카드 또한 오가는 이의 눈길을 한참이나 끌어당긴다.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 손꼽아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 돌아오면 마냥 들뜬 마음에 일찌감치 몇몇 친구들과 어우러진 나는 북적거리는 시내를 향해 길을 나선다. 딱히 무슨 할 일이 있거나 볼일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날은 천원짜리 몇 장을 넣은 호주머니에 양손을 깊숙이 찔러 넣어 많은 인파 속에 어깨를 부딪쳐가며 비좁은 거리를 활보하듯 무작정 걸어도 마냥 행복했다.
이유인즉 당시는 시대가 시대인 만큼 매일 밤 자정이면 통금이 실시되고 있었으며, 평소 때 친구들과 어우러져 술판이라도 벌일라치면 그 통금이란 것이 여간 성가시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회 초년병인 우리 같은 초보 술꾼들은 누렇게 퇴색된 술집 벽면 위에 자리하여 '똑딱똑딱' 시간을 헤아리는 둥글넓적한 벽시계에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 날은 그 지긋지긋한 통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 이브는 일년 중 다섯 손가락에 꼽아 밤새껏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따라서 무작정 거리에 나선 우리들은 때 이른 저녁밥에 자정을 훌쩍 넘겨 배가 고플라치면 서너 잔의 잔술과 안주라곤 싸구려 열합(홍합)탕을 노점상 푸석푸석한 파마 머리 아주머니에게 적다는 푸념 끝에 홍합 두어 마리와 국물 한 국자를 덤으로 얻은 기분에 호주머니를 툴툴 털어도 결코 아깝지가 않았다. 이윽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목젖까지 '쏴'한 소주를 단숨에 입안에다 털어 넣고는 마지막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후루룩' 하는 소리 끝에 몽땅 비우고는 거리에 넘쳐나는 인파 속에 몸을 실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운 기억은 지금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게 한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올 한 해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 같다. 경기 침체로 인한 취업난이 그러하고 '신종플루'가 창궐하여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것 또한 그러하며 모처럼 대풍을 맞은 농민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어진 것 또한 그러하다. 하여 기축년(己丑年)의 복잡하고 다사다난했던 서러운 사연들은 서리서리 간직하여 밑거름으로 삼고, 희망찬 경인(庚寅年)년과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모든 이의 가슴속에 품은 뜻을 활짝 펼칠 수 있는 명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원선(대구 수성구 중동)
♥ 대입시험 후 본 낡은 어머니 코트
며칠 전 3년 동안 졸음과 싸워가면서 보낸 결과를 통지 받았다. 조금만 더 업그레이드되길 빌었는데 가채점 그대로였다. 절망감에 힘이 쭉 빠져 버렸고 아무 말도 하기 싫어 떡볶이를 사먹자는 친구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곧장 집에 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다.
울어도 소용없는 던져진 주사위였다. 고3인 딸을 위해 뒷바라지해준 아빠 엄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되어 끼니를 굶고 있는 것도 몰랐다. 날이 저물고 벨소리가 울리고 현관문이 열리기 바쁘게 엄마는 결과를 물으셨다. "그런 대로",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방으로 들어가 있으니 후회스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었을까. 엄마는 저녁 먹으라고 불렀다.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데 엄마는 가고 싶은 학과를 잘 선택해서 원서를 작성하라고만 하시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으셨다. 그리고 3일 후 엄마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양혜인님 수시합격을 축하합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혹시나 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사실 확인을 했다. 합격이다. 난 엄마 휴대폰에 합격이란 두 글자를 찍어놓고(난 고3 때 열공해 보려고 폰을 없애버렸다) 그제야 한 끼 굶었다고 배꼽 시계가 시끄럽게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라면에 식은 밥을 말아 먹고 가만히 앉아 있기에 힘이 남아돌아 한 번도 안 해 본 주방 설거지를 하고 방 청소도 했다.
마지막 아빠 엄마 방을 청소하는데 옷걸이에 걸려 있는 엄마 옷이 눈에 들어왔다. 주머니는 낡아서 바느질로 봉한 지 오래된 옷, 그것도 몇년 전에 이모가 준 옷이다.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공부하는 데 힘들다면서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시고 내가 과외를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그러라고 하신 분이시다. 엄마가 자신보다 자식의 미래의 꿈을 키워주려고 애쓰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고3 마지막이자 대학생이 되기 전에 수고하신 엄마 선물을 사드리기 위해 용돈이 들어 있는 통장을 꺼냈다. 통장에는 6만4천500원이 들어 있었다. 바로 찾아서 입고 외출할 수 있는 엄마 옷을 사기 위해 할인매장으로 갔다. 엄마들이 입는 옷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비싸 돈이 부족했다. 몇 바퀴를 돌아다녀도 비슷한 가격대 옷을 구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 옷을 사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끝에 매일신문 독자카페가 떠올랐다.
추억의 크리스마스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글이 채택되어 용돈이랑 보태서 옷 사드리고 나머지 용돈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사가지고 촛불을 밝히고 묵묵히 옆에서 응원해주신 아빠 엄마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양혜인(대구 북구 복현2동)
♥ 취업못한 딸에게 '용기' 선물을
할 일이 많은 이 여인은 오늘도 마음이 갈래갈래 헤매인다. 첫딸 노처녀를 시집보내야 되는데 시집 갈 생각도 안 하는 딸이 실상은 시집갈 여유가 없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안쓰럽다. 공부를 마치고 좋은 선생님이 되어서 시집 가겠다고 버티는 딸을 보면서 눈치만 보고 있는 나의 마음도 편치 않다. 딸은 더욱 갑갑할 것이다. 친구 결혼식에 갔다 오는 모습은 왠지 기가 죽어 보이고 안쓰럽다. 공부(임용고시)한다고 아무렇게나 해 다니는 것 보면 측은해 보인다. 예쁜 옷, 예쁜 가방, 구두를 멋지게 차려입고 친구 만나러 다니면 좋겠다. 백마 탄 남자 친구와 청춘의 낭만을 즐기며 마지막 남은 낙엽을 밟으며 오솔길 걷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제발 팔짱 낄 든든한 사윗감 데려와 줘. 작은 애도 올해 졸업반인데 좋은 데 취업되길 희망해 본다. 효심 가득한 우리 딸들, 메리 크리스마스! 잊을 수 없는 멋진 크리스마스 만들길 바란다.
정성옥(경산시 중산동)
♥ 낭만적 계획 세웠지만 레스토랑 자리 업어
남자 친구를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둘은 들뜬 마음으로 무엇을 할지 계획했고 팔공산에서 저녁을 먹고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근사한 카페에서 차 한잔 하는 것으로 거창하지 않지만 첫 크리스마스를 계획했었다.
크리스마스 오후, 남자 친구는 집 앞으로 날 데리러 왔고 함께 팔공산으로 향했다. 두루뭉술하게 계획을 짜서 막상 저녁 메뉴를 정하지 못해 팔공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특별한 날인 만큼 들어가는 곳마다 자리가 가득 차서 결국 우리는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삼계탕 집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에 삼계탕이라니…' 우린 웃으며 자동차 극장 시간에 맞춘다고 조금 급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영화상영 중에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붉혔다. 나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삼계탕을 먹은 남자 친구는 심하게 체했는지 구토 증상까지 일으켜 결국 멋진 카페에서의 커피 한잔은 다음으로 미루고 팔공산을 내려와야 했다.
그 당시에는 멋진 계획에 차질이 생겨 악몽의 크리스마스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너무나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연인들이여! 부디 알찬 계획으로 행복한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길….
인터넷투고(carman_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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