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강의 교재를 찾던 중 쓸 만한 영어책 한 권을 알게 되었다. 영어도 쉽고 내용도 알차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책값이 상상을 초월한다. 책 속의 일러스트와 사진 그리고 참고 자료 및 CD 부록에 지불한 저작권료 때문이란다. 포기하고 다른 교재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괜찮은 책을 또 하나 발견하였다. 그런데 주문이 불가능했다. 출판사에서 한국을 비롯한 몇몇 특정 국가에는 그 책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저작권을 정당히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P2P 사이트에 노래와 영화를 업로드한 청소년들이 저작권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혹은 처벌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대개의 경우 저작권자들은 이들에게 배상책임을 물어 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위자료를 협상한다. 많은 청소년들이 유료로 운영되는 P2P 사이트들을 통해 저작물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했기 때문에 자기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불한 금액은 사이트를 이용한 비용일 뿐, 저작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비용이었다. 그러므로 공개된 유료 사이트를 통해 파일을 주고받았더라도, 저작물에 대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저작권법을 위반한 범법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저작물을 다운로드한 경우에 대해서는 크게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일단 저작권법에 대한 대중적 인지가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이미 저작물을 업로드하여 네트워크에 유포하는 경우는 물론 이를 다운로드하는 경우까지 조사해서 처벌하거나 고소하고 있다. 최근의 추세로는 우리의 경우도 머지않아 보인다. 곧 저작물의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단속과 처벌 그리고 고소 및 고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저작권법이 점점 더 엄격히 적용되고 이를 통한 고소'고발의 수위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저작권법의 적용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물론 저작권은 적법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저작권법의 원 취지가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그것의 적용이 다만 저작권자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사고되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창작자의 권익을 향상함으로써 그들의 창조적 열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문화적 결실을 더욱 풍요롭게 하자는 데 있다. 그러므로 창작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창작물을 정당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일이 오히려 우리의 문화적 향유와 자유를 억압하거나 그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창발을 가로막아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현실의 상황에서 저작권법은 점점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추세에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보편화, 그리고 그것을 수단으로 하는 창작 환경의 변화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최근의 저작권법 적용 추세는 힙합이나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등에는 거의 재앙 수준에 가깝다. 수십 곡을 믹스 다운해서 전혀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는 리믹스 작업에서 모든 곡의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이에 특정한 저작권료를 지불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 및 비영리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영상 소스 등을 통한 교육 및 훈련들 또한 위험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받는 대학의 강의시간에 영화를 틀어주는 것은 충분히 '불법'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유튜브를 통해서 특정한 노래를 패러디하는 일은,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지 않은 한,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하고, CD는 음반을 구입해 들어야 한다. 게임 타이틀도 제대로 된 제품을 구입해야 하고, 소프트웨어 또한 합당한 가격으로 구입해서 써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된 저작권법은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숨막히게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음반 산업과 영화 시장을 생각하면, 단순히 하나로 결론을 내릴 일이 아니지만, 보호의 논리가 억압의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나저나 청소년을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들은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해 볼 일이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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