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외양간 고치기

지난 주말 일본과 싱가포르의 유명 외과 의사들을 초청해 암 관련 첨단 수술에 대한 워크숍을 가졌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미래의 공동 연구에 대한 논의를 하던 중 내가 분위기에 맞지 않는 다소 썰렁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것들이 몹시 중요한 줄은 알지만 우리에게는 더욱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토론하고 연구하는 암 관련 첨단 수술을 앞으로 해야 할 사람들이 최근에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을 하려는 의사가 병원마다 아예 없거나 급격히 감소한 반면 육체적 노동이 없고 미용에 관계되는 분야는 지원자가 몰리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 사정은 어떤지요?"

그러자 일본에서 온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일본도 마찬가집니다. 최근의 의사들은 소위 삼무(三無), 즉 세 가지가 없는 분야라야 지원을 합니다. 첫째 사망 환자가 없어야 하고, 둘째 암 환자가 없어야 하며, 셋째 야간 근무가 없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우리 외과는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잖아요?"

사실 일본은 대도시에서조차 산부인과 의사를 찾기 힘들어 산모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종종 언론에 보도된다. 우리나라도 지금 산부인과 지원자가 없으니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곧 벌어질 현상이다. 더구나 외과와 흉부외과 기피현상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욱 급속히 진행되고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러니 앞으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막힌 현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첫째, 절대로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아프거나 다쳐서는 안 된다. 죽을 가능성이 있을 경우 봐 줄 의사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암은 절대 걸리면 안 된다. 암 수술 할 의사가 없어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가서 수술 받으면 되는데 엄청난 경비를 각오해야 한다. 셋째, 아무리 아파도 밤에는 별 도리가 없다. 병원에 가 봐야 야간에 근무하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과 중에 치료를 받고 입원했더라도 의사는 시간이 되면 칼같이 퇴근해 버린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내년부터 부분적으로 시작될 시나리오다. 우리 병원을 포함해 전국의 병원마다 생명이 걸린 중요 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서 이미 의사의 업무를 대신해 줄 인력(PA'의사 보조사)을 뽑았거나 뽑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가 부족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전체 의사 수는 최근 10~20년 사이에 3~5배로 급격히 늘었다. 외과와 산부인과의 경우 의사 수가 10만명을 넘어선 지금은 지원자가 없지만 의사 수가 2만명 남짓하던 20여년 전에는 지원자들로 들끓었다.

보람과 자부심만으로 일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어차피 외과의사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직업인일 따름이다. 생명과 밀접한, 즉 사람이 죽고 사는 분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힘들고 고달프다. 그렇지만 누군가 해야 한다면 반드시 합당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소를 잃고서야 외양간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를 더 잃어야 외양간을 제대로 고칠 것인가.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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