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프랑스 '지방분권' 고민에서 배울 점

2002년 대선이 끝난 시점, 기자는 유럽에 있었다.

당시 대선의 최대 이슈는 지방분권이었고 행정 수도 이전과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였다. 유럽에 간 이유도 '지방분권'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수도권 집중화'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무성했지만 국가경쟁력을 위해 지방분권이 왜 필요한지,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지 정확한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 지방분권에 대한 국내 학계의 연구물도 찾아보기 어려워 취재 전 '정보수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3주간의 취재를 통해 느낀 점은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수도'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도시마다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독일에서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과 '지방분권이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을 프랑스에서 확인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파리' 집중화에 대한 문제와 함께 지방분권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2차 대전 직후인 1940년대 후반부터다.

파리에 인구가 몰려들면서 교통과 범죄 문제 등이 심각해지고 지방이 황폐화되면서 학계를 중심으로 '프랑스 사막화' 문제가 제기됐으며 정치권에서도 '지방분권'이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

특히 1950년대 이후 경쟁 국가인 독일의 '지방 도시'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의 반성은 국가 정책으로까지 이어졌다. 국제 도시라고는 '파리' 하나밖에 없는 프랑스에 비해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베를린(당시는 수도가 아님), 뮌헨 등 10여개 도시가 국제 도시로 성장한 독일을 보면서 지방 도시 성장의 필요성을 절감한 때문이다.

하지만 1950년대 입안된 지방분권에 관한 여러 가지 정책들은 기자가 방문한 2002년까지 50년간 진행형 과제로 이어지고 있었다. 대기업 및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나 강도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한 탓이다.

물론 50년의 진통을 겪으면서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

프랑스가 만든 지방분권 제도가 수도권 집중이 문제가 된 일본과 한국의 국가 정책으로 수출됐기 때문이다. 수도권 공장총량제, 과밀부담금 제도, 첨단산업지대육성, 균형도시 정책 등이 모두 프랑스에서 만든 지방분권을 위한 정책적 제도들이다.

요즘 한국도 정권이 바뀌면서 프랑스의 전철을 밟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만든 세종시에 대해 현 정부가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각이 커지고 있고 국가 경쟁력을 위한 '수도 분할 불가' 주장도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권력'과 '돈'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한국에서 '서울'을 건드리지 않고 '지방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파리가 프랑스에서 갖는 비중은 국민 총생산의 29%, 고급행정관료의 40%, 공공연구기관의 55% 정도다. 한국의 '서울'과는 비교되지 않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안고 있는 프랑스가 왜 '지방분권'을 국가적 과제로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한국의 역동성과 저력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50년 고민이 짧은 기간에 끝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협 사회정책팀 차장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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