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길

길은 천차만별이다. 크고 작고, 넓고 좁은 땅길에서부터 하늘길 바닷길까지 모양새도 다르고 시작과 끝도 저마다 같지 않다. 골목길과 신작로의 다름은 지나가는 사람도 달리한다. 누가 지나가느냐에 따라 길이 얻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장례길 혼사길이 같은 길에 동행하고 과거길이 유배길로 바뀌기도 한다. 돈벌이가 제일인 상인의 길에 예술인, 종교인, 정치인이 겁없이 나섰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는 길도 같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마다 다른 길은 만남도 다르게 한다. 그래서 길은 선택이라고도 한다. 쇄국의 시대 만남을 중개하는 길은 불필요한 제도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줄일수록 사회는 안전해진다고 믿었던 시대였다. 바깥 도적의 침입만 쉽게 할 뿐 민간끼리의 만남과 소통은 권력자들에게는 성가신 일이었기에 통행금지가 필요했다. 유명세를 치르는 서울 종로의 피맛골은 서민들이 양반들의 말을 피하기 위해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선택이기에 길은 출구도 제각각이다. 어떤 행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말은 같지 않다. 갈가리 나뉘는 마음의 행로가 가져오는 마지막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를 인생살이의 제일로 치는 이유도 결실의 다름 때문일 듯하다. 동물의 세계에서 새끼를 돌보는 어미의 가르침은 '이 길이 어떤 길'임을 일깨워줌이 전부라는 게 학자들의 말이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방기곡경(旁岐曲逕)을 꼽았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닌 샛길과 굽은 길을 이르는 말로 당당한 선택 대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한다. 제왕이 외척과 측근을 지나치게 중시해 복을 구하려 한다면 소인배들이 방기곡경의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한 율곡의 책에 나오는 말이다.

좁은 길을 선택한 해라니 아마도 지도층의 독선을 비꼰 듯하다.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독단적 생각으로 정책을 밀고 나간 한 해라는 게 이 말을 선택한 이유란다. 국가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지 않고, 작은 이익을 취하려다 크고 소중한 가치를 버리지 않았는지를 성찰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곁들였다. 선두에 선 사람이 어떤 길을 잡느냐에 따라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삶이 다르다면 길은 저 혼자의 선택은 아닌 모양이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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