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괴로운 생사

세밑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찬바람과 함께 세밑이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해가 거듭되면서 나이가 들수록,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계절의 변화입니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기축년 소띠 해는 어느 해보다 더 힘들었던 같습니다. 하루하루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짐을 느끼는 시대입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란 질문이 어색한 시대이기도 하고요.

새 천년을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내년이면 벌써 10년이 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엇이 달라졌는지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변화에 치여 삶의 의미를 잃은 것은 아닌지요. 아니 삶의 노예로 전락해 있는 상황은 아닌지요.

사회부 데스크에서 만나는 일상의 상당 부분은 아쉽고 허무하게도 '핏빛'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희망이 되어야 할 삶 대신 노예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삶의 노예로 전락한 이들은 결국 극단적인 일을 선택합니다. 죽음이지요. 그동안 데스크에서 수많은 죽음의 단면을 보았지만 큰 뉴스가 되지 않은 두 죽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 희생자 모두 우리 사회의 미래 주역들이라 쉬이 잊히지 않네요.

이달 1일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서 한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 아파트 15층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친구와 다투다 교사들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은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가 교사들에게서 심한 체벌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그가 아파트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찍힌 CCTV가 있고, 15층 복도에서 가방이 발견된 점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사건을 매듭지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투신으로 몰고 갔을까요. 유족들은 영세민아파트에 사는 그가 교사들에게서 심한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 발생 당일에도 그는 다툰 친구보다 1시간 이상 훈육을 더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16일에는 경산 진량읍에서 26세의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여성이 목을 매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42세 된 남편이 발견해 신고했는데 경찰은 그녀가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경산에서는 지난해 2월에도 22세의 베트남 출신 신부가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려 숨지는 일이 발생, 여론을 들끓게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 당국은 "결혼이민여성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행정력은 크게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며 발뺌합니다. 우울증을 앓아온 여성이 한국에 시집와 자살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에 걸려 자살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반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자는 요즘 금호강변에서 낚시만으로 살아가는 60대 나이의 아저씨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잉어, 붕어 몇 마리 잡는 것만으로, 집도 없이 텐트를 치고 생계를 이어가는 그는 우려와는 달리 당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10만 원이면 한 달을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그의 생활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규칙적이고 깨끗합니다. 나름대로 삶의 원칙도 있고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사회부에 전화를 거는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데스크 직통 전화인데 전화를 받지 않은 날에는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신문사에 거는 전화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문 제작 시간이라 성의 없이 전화를 받지만 할아버지가 꿋꿋이 계속 전화해 주길 바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은 자꾸만 위축되지만 경인년 새해에는 더더욱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끌려가는 수동적인 삶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이지만,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자신이 가진 명예를 지키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삶은 치열한 전투입니다. 삼국유사 의해(義解) '사복(蛇福)의 불언(不言)'에 실린 신라시대 고승 사복과 원효의 말입니다.

사복이 죽은 어머니를 위해 계를 해달라고 하자, 원효는 "태어나지 말지니, 죽는 것이 괴롭구나. 죽지 말지니, 태어나는 것이 괴롭구나"라고 했다. 이에 사복이 "말이 번거롭다"고 하자, 원효는 "죽고 사는 것이 괴롭구나"라고 했다.

사회부장 김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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